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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Nov 15. 2020

때로는 행복이 느리게 오기도 해

나도 32살이 돼서야 겨우 "행복해."라는 말을 뱉을 수 있게 됐는걸.

나는 나 스스로가 30대의 인생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10대 20대의 나는 내 삶이 권태로웠고, 우울했으며, 지루했고 언제나 내 삶의 불행한 엔딩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던 건 21살. 그때는 진지하게 계획도 세웠다. 10대 때 21살쯤 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21살의 나는 '아직은 경험할 것이 남아 있을 것 같으니 죽음은 29살로 미루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끝을 향해 하루하루 불안하고 위태로운 날들을 보냈고, 결국 내가 죽기로 결심했던 29살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막 영국 유학을 끝내고 돌아왔을 시점이었다. 공부도 할 만큼 했겠다, 삶의 경험도 할 만큼 해서 인생이라는 것은 거기서 거기라는 결론을 얻은 직후였다.


그쯤 나는 본가에서 3개월간 살았다. 19살 때부터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했고, 도중에 4년이나 유학 생활 해 나와 멀리 떨어져서 지낸 세월이 길었던 부모님의, '자식과 좀 붙어있어 보자.'라는 소망을 들어드리기 위해서였다. 그 3개월 간 나는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설악산으로 여행도 갔고, 매주 주말마다 차를 타고 이름 모를 소도시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도 많이 나누며 우리 사이에서의 잃어버린 4년을 채우고 있었다.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나의 죽음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


"엄마, 내가 엄마보다 더 일찍 죽어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엄마는,


"적어도 우리를 자식 앞세운 부모로 만들지는 마. 아니 너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 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우울해하고 불행해하는 거야?"


라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행복을 충만하게 느끼는 그릇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누군가의 행복의 크기는 간장종지만 해서, 행복을 간장종지 크기만 부어줘도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누군가의 행복의 크기는 밑 빠진 큰 독 같아서 아무리 행복을 퍼부어줘도 행복이 줄줄 세어버려서 행복감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후자의 사람이라, 삶이 불행한가 봐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기점으로 하나 결심한 게 있었다. 적어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는 사람은 되지 말자. 내가 내 삶에 부정적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생을 선물해주신 부모님을 사랑했고, 부모님의 뜻을 허망하게 꺾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았다.


이 다짐 덕에 나는 30대가 되었다.


그러나 30대의 삶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나는 내 삶이 너무 버거웠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으니 계속 비틀거렸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이제는 지긋지긋해졌으며, 이대로 꼬꾸라지고 싶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은 천천히 침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우울했다. 내가 과연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게 될 날이 올까?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 2020년 나는 천천히 변해갔다. 행복을 느끼는 크기가 밑 빠진 큰 독 같았던 나는, 간장종지만 한 행복에도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씨 뿌리는 농부처럼 부지런히 사람들에게 사랑을 줬던 나에게 보답이라도 하는 듯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깊고 넓은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갔고, 가끔은 내 사람들을 챙기느라 버거운 순간들도 존재했다. 그때 확인했다. 아, 내가 걷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니었구나. 또, 30대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느리더라도 나는 내 꿈을 향해 달리리라. 생각해보면 내가 자꾸만 불행해졌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설정해놓은 성공의 목표치에 빠르게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자꾸만 나를 뒤흔들었다. 얼른 성공해야 하는데, 그래서 안정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라는 마음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그러나 삶의 속도는 각자 다르며, 나보다 이미 빠른 걸음으로 성공의 끝자락에 도달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올해 들어서 나는 겨우 인정했다.


그것을 인정한 후 나는 편안해졌다. 물론 여전히 삶이 권태로워서 우울하고 위태로운 순간도 여전히 존재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를 다잡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니 나는 '드디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충만한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햇살이 좋아서, 때로는 커피 향이 좋아서, 때로는 하늘이 예뻐서, 때로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대화의 온도가 너무 따뜻해서 '행복하네.'라는 말을 육성으로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울, 불안, 권태, 슬픔,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던 이도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길을 끝까지 지지해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나와 함께 있어 안온함을 느낀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리고 나의 세계를 천천히 이해해보겠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랑스러운 애인이 있어서 내 삶은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때로는 행복을 느끼는 때가 천천히 오기도 한다. 나도 32살이 돼서야 겨우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되었으니까.


따뜻한 기운으로 점철된 나의 32살은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다.


음습한 감정을 흡수해 빛이 나는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3살의 나는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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