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6년 전에 썼던 글
나는 지금 여행을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탔고, 창 밖으로 보이는 검푸른 풍경에 여행을 떠나는 건지도 혹은 일상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사람들의 무거운 얼굴을 바라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감성적이게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 "진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쩌면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시시껄렁한 결론만을 낸 채 끝이 날 수도 있다. 그래도, 기록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혹은 정리하지 않으면 내 생각이 공중에 흩뿌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해본다.
며칠 전, "L"과 가벼운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며 적당한 선에서만 노력을 하고 그 이상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또 타인에게 진심을 주어 굳이 다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20대 초 중반을 보내며 느낀 것은, 적당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허무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원래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늘 부딪혔고, 사람에게 상처 주기도 많이 줬고, 받기도 많이 받았다.
매일이 전쟁처럼, 마음이 아팠고, 지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아픈 것이 싫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 받는 이유가 내가 타인에게 진심을 주는 만큼 타인이 나에게 진심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면 나 또한 진심을 쏟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마음먹은 이후론 나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대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쿨"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했다. 그러다 보니 덜 아팠고 덜 상처 받았으며 모든 인간관계가 무난했다. 스스로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든 인간관계를 차갑게 쳐낼 수 있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내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온 힘을 다해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나는 진심을 쏟아붓고 나와 상대의 비밀을 공유해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타입이었는데, 그저 그렇게 사람을 대하다 보니 내 사람들이 사라져 갔다.
문득, 허무해졌다.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부정하고, 진심을 쏟아낼 상대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외로워하는 내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상처 받지 않았지만 우울했고, 무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감사하지 않았다. 그것을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곧 나는 나 스스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오지랖 넓게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대 쿨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성격을 갖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적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내 편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의 가치를 보기 시작했다. 또한 내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할 때 생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사람에게 진심을 주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 것. 설령 상대방이 내게 진심이 아니더라도 그 사실에 상처 받지 말고 내가 진심을 다해 그 사람을 대했다는 것에 대해서 만족할 것.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사람에게 신나게 다쳐보기도 하고, 지질해져보기도 하며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 것.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도, 내가 후에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머리 써서 계산하는 연애를 하지 않을 것.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마음껏 표현하고 후에 상처 받더라도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상처를 성장의 발 판으로 삼을 것. 친구 관계 또한, 상대가 나에게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지 말고 내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늘 물으며 행동할 것.
그러다 보면 나의 진심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만, 그런 류의 사람이 나를 날카롭게 할퀴어도 "내가 안 좋은 사람인 건가?" 식의 자기 비하에 빠져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지 말 것. 누구나 나의 진심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그것이 내가 옳지 못하기 때문, 혹은 그 사람이 나쁘기 때문이 아님을 알 것.
이렇게 마음먹고 다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돌아왔는지를 설명하려면, 아마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잘난 척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것이 아프다. 감정적으로 무너질 때도 있다. 하지만,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렇게 상처 받기를 반복하다 보면,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종국엔 모든 사람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내공 있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오늘,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에게 상처 받아 아파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어머니에게 진심을 다해, "상처 받더라도 괜찮아요. 마음이야 아프겠지만 그러다 보면 정신적으로 배우는 게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저를 성장하게 만들어주겠죠."라고 씩씩하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2시간 동안, 내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섬광처럼 스쳐간다. 사람에게 상처 받았던 과거의 순간들 또한 스쳐 지나간다.
상처 받았던 기억들은 마음 한편에서 트라우마가 되어 현재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과거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건강한 삶을 살고 싶고, 건강한 생각을, 건강한 성장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다해 사람을 대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먹은 나에게 당신들처럼 멋진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주어, 눈물 날 만큼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