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에게 끝나지 않은 소설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이별을 말하지 않은 채 이별했다.
그날의 나는 필사적으로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로부터 이별을 읽어야만 했다.
넌,
“갈게.”
라고 말을 했고, 나는
“응.”
이라고 대답을 했을 뿐.
그 뒤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너랑 연인 관계로 지냈으니 우리가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거냐며 따져 물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우리 사이는 깨진 유리컵이나 다름없었고, 나의 노력만으로는 깨진 빈틈을 이어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돼버린 후, 흐르는 대로 너를 내버려 두고 싶었다.
‘네가 연락 오면 헤어지지 않는 거고, 연락이 안 오면 헤어져야지.’
이렇게 마음먹다 보니 연락이 오길 바라다가도 어쩔 땐 연락이 오질 않길 바라기도 했다. 어쩌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널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네가 읽었는지도, 아니면 너 또한 우리의 관계가 끝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너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잔인했다.
그런데 너에게만 일방적으로 잔인하네, 라고 말하기엔 나 또한 너에게 잔인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널 기만하기도 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너에게 버려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우리를 보며 너희 둘 관계는 대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난 글쎄,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라고 답하였다.
이렇듯 꼬여버린 인연이었지만, 내가 먼저 널 버릴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너를 버티는 무수한 시간 동안 난 괜찮아, 라고 말하며 -혹은 다짐하며-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너로부터 비참하게 할퀴어지곤 하였다. 반듯한 태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너는, 나를 외로움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곤 했다.
넌 나에게 다정하고 상냥하고 예의 있었지만 그 이상이 없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있는 힘껏 날 사랑한다고 표현해줘, 그게 그렇게 어려웠니?
우리가 주인공이던 연극은 기어코 막이 내렸다. 암막이 쳐져버린 로맨스가 가끔 미치도록 배신감이 들었지만,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애정 넘치게 읽어 내려가던 연애 소설이라고 할 지라도 작가가 원치 않으면 완결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우연히 꺼낸 다른 로맨스 소설이 어이없을 만큼 날 위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지금처럼.
새롭게 읽어 내려가는 소설은 너와는 달라서 읽는 내내 나는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손 잡아줘, 안아줘, 보고 싶어, 소유하고 싶어, 좋아해, 사랑해, 이 감정들을 표현하는 하나하나가 나와 비슷한 문장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되려 절망하였다. 나와 결이 다른 문체를 끌어안고 버티겠다고 있었던 게 잘못된 것이었구나.
그렇게 나는 너를 흘려보내고, 또 다른 누군가를 내 삶에 채워 넣었다.
너 대신 날 위로해 주던 이 소설도 언젠가는 끝이 날 수도 있겠지. 이 소설의 끝이 해피 엔딩일 수도 베드 엔딩일 수도 어쩌면 너처럼 완결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너처럼 비참한 결론으로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들어서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끈질기게 넘겨볼까 한다.
이제야 말한다.
너는 나에게 끝나지 않은 소설처럼 기억 한편에 새겨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무척 사랑했으니 너와 함께 기록한 시간들에 후회는 없다. 이제는 너를 돌아보지 않을게.
그러니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