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생계형 요리사는 오늘도 삶을 요리한다
2. 오늘도 삶을 요리한다
“엄마, 된장 얼마큼 넣어?”
“ 알아서.”
몰라서 물었는데 알아서 넣으랬다. 반 수저 넣으니 맹맹했다. 또 반 수저 넣어도 역시 아무 맛이 안 났다.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넣었더니, 소금소태가 됐다. 물을 좀 넣었더니 다시 맹탕.된장국이 점점 불어났다. 저녁밥 혼자 지어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열여덟 딸은 안방에 있던 엄마를 기어코 부엌으로 불러냈다. 쓸데없이 불어난 국물 먼저 덜어낸 후, 간을 슬쩍 봤다. 반숟갈보다 많고 한 숟갈보다 적은 아주 애매한 양을 대충 때려 넣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휘휘 젓더니 다시 안방으로 획 들어가 버렸다. 별 기대 없이 맛을 봤는데, 신기하게 간이 딱 맞았다. 이게 한 번에 되는 거였다고?
엉망진창 된장국을 끓였던 열여덟 딸은 이제 열여덟 된 아들에게 질문 세례를 받는 엄마가 됐다. 엄마 생일에 미역국을 손수 끓여보겠단다.
“엄마, 미역이 딱딱해. 어떻게 해? 엄마, 간장 넣어? 아니면 소금 넣어? 엄마! 엄마!”
몰라서 묻는 아들에게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알아서 하랬다. 삼대에 걸친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 엄마가 돼서야 왜 그리 답했는지 알겠다. 거듭된 시행착오로 손이 기억하는 딱 맞는 양. 계량하지 않아서 얼마큼이란 질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려주지 못할 뿐이었다. 인간관계도 간 맞추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적정한 거리를 단번에 맞출 수 있나? 얼마큼이 적당할까? 얼마큼이란 질문에 알아서란 말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요리하듯 사람마다 다른 그 얼마큼을 찾는 게 사는 재미일 수 있겠다. 셀 수 없이 많은 식재료가 저마다 특색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십인십색이니까.
이백인 분 파티가 있던 날, 난생처음 살아있는 바닷가재 손질을 맡았다. 바로 삶아 버리면 몸통이 동그랗게 오그라들어서 나무젓가락을 몸통에 꽂는 게 첫 번째 임무였다.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수많은 다리가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고 집게다리 접었다 폈다 하는 저 아이들 생살에 나무젓가락을 꽂으라니. 몸통을 잡으려는데, 나도 모르게 ‘으악’ 소리가 났다. 도망가고 싶었다. 셰프는 뭐가 무섭냐며 집게 다 묶였다는 핀잔과 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격려를 함께 보냈다. 팔딱거리는 애 몸에 두 눈 꼭 감고 나무젓가락을 꽂을 때마다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이상하게도 반복하다 보니, 처음처럼 무섭지 않았다. 한 스무 마리째 꽂을 땐 그러려니 하게 됐다.
아직 죽지 않은 애를 오렌지와 레몬 동동 떠 있는 펄펄 끓는 물에 넣을 차례. 생살 찢는 것도 모자라 아무 죄 없는 애들에게 팽형이 웬 말인가. 어두운 갈색 몸통이 새빨갛게 될 때까지 삶았다가 팔팔 끓어오른 애를 얼음물에 담갔다. 황천길 간 애들을 집게, 머리, 몸통으로 나눴다. 그중 몸통은 반으로 갈라야 했다. 좀 수월해 뵈는 배를 선택했다. 체중 백만 프로 실어 칼을 꽂아도 금만 갈 뿐 깔끔하게 반쪽으로 쪼개지지 않았다. 양쪽 끝을 잡고 꾹 눌러 반으로 나누고 가위까지 동원했다. 다섯 마리쯤 손질했을 때, 보다 못한 셰프가 칼 들고 출동했다. 배딱지가 아니라 등의 제일 약한 부분인 마디를 공략하랬다. 칼끝을 마디 중앙에 꽂고 살짝 힘주며 내렸더니 세상 쉽게 갈라졌다. 너 이리 쉬운 아이였던 거니?
등은 딱딱해서 가르기 힘들 줄 알았다. 단단한 등딱지에 공략 포인트가 있겠나 싶었다. 그나마 쉬워 보이는 배를 가르면 될 거란 잔꾀를 썼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고 했던가. 정면 돌파하지 않았기에 힘과 시간만 배 이상 들었다. 생계형 요리사는 오늘도 삶을 요리한다. 무서워 도망친다고 누가 대신 살아주나. 천지에 처음 아닌 일이 있던가. 수백인 분 바닷가재를 손질하며 삶도 같이 손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