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천, 십 시 열 분, 일 분의 삼? 다시 봐도 이상하다. 가끔 남편과 아이가 툭툭 내뱉는 말은 무늬만 한국말. 두 남자의 엉뚱한 한국말은 우리말과 영어를 맞춰보면 얼추 맞는다. 남편도 무늬만 영어인 내 말을 같은 방식으로 고민하며 퍼즐 맞춘다.
연애할 때였다. 같은 지명인데, 영어로 제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헷갈린다며 도로 표지판을 읽을 수 있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 무렵 숫자 읽는 법을 같이 알려줬다. 숫자 10,000을 써서 보여줬다.
“자기야 요거 읽어봐.“
“십천”
‘띠용! 잘못 들었나. 이건 또 다른 욕인가. 무슨 말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말하냐고 묻기 전에 곱씹었다. ’10,000은 영어로 ten thousand, 영어를 우리말로 바꿔 “십+천”인건가.’가설을 세웠으니, 증명하고자 이번엔 100,000을 보여줬다.
“자기야! 요것도 읽어봐.”
“백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아직 “만”이란 단위를 배우기 전이라 남편은 알고 있는 한국말을 영어와 일대일로 대응시켜 십천과 백천을 생각해 냈다. 두 개의 언어가 숫자를 끊는 단위가 달랐고, 그 단위를 남편은 아직 몰랐다. 영어는 숫자를 세 자리로 끊지만, 우리말은 네 자리로 끊는다. 한국인이 영어로 백만 단위 이상 숫자를 말할 때 헷갈리는 이유와 같다. 우리에겐 새로운 단위가 없는 백만이란 단위가 영어로는 존재하니까.
시계를 보던 아이가 “엄마 지금 십 시 열 분이지?”라고 물었다 응, 뭐라고. 십 시 열 분. 이건 또 뭔 소린가. 앞뒤 바꿔서 얘기하는건가.
“강호야. 십 시 열 분 아니고, 열 시 십 분이야.”
“왜 열 시 십 분은 맞고 십 시 열 분은 틀려?”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도 모를뿐더러, 여태껏 배운 대로 그냥 썼기 때문이다. 같은 기수사를 쓰는데, 왜 시간은 고유어 기수사, 분은 한자어 기수사로 말해야 하는지, 바꿔 쓰면 왜 틀리는지 의문을 품은 적이 없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틀을 깨거나 바꿔서 쓸 엄두를 내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수가 적을수록 고유어 수로, 클수록 한자어 수로 읽는 경향이 있다”라고 나왔다. 이제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
아이는 요즘 중고 책방에서 손수 고른 <연개소문>을 읽고 있다. 그 책 삼분의 일 정도 읽던 날이다.
“엄마, 벌써 일분의 삼을 읽었어.”
"일 분의 삼, 분수 맞아? 그거 그냥 삼 아냐? 강호야! 일 분의 삼이 아니라, 삼 분의 일. 분모 먼저 읽어야지.”
“엄마, 1/3은 영어로 one third야 그래서 그냥 순서대로 말했어.”
아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1/3이 영어로 one third라서 일 분의 삼이라 말했음을 짐작했는데, 틀리게 한 말을 고쳐 주고 싶은 욕심이 컸나보다.
그냥 지나쳐도 될 엉뚱한 이 말들을 왜 붙잡고 있을까. 왜 무늬만 한국말이라고 했을까. 영어가 더 편한 남편과 아이는 한국말을 썼지만, 영어식 사고로 만들어낸 한국말이었다. 내게 당연한 게 이 두 남자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여태 너무 당연했기에 다르게 보려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한 번쯤 비틀어 보게 만드는 두 남자가 고맙다. 어릴 때 입버릇처럼 부르던 <도깨비 나라>가 생각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를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와라 뚝~ 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남편과 아이 입에서 또 어떤 금과 은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