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아빠가 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이 책을 꺼낸다. 유일하게 아빠 유품으로 챙겨 온 <가례백과> 인터넷도 느리던 시절에 쓸줄도 몰랐던 아빠.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후손에게 남기고 싶다며 한땀한땀 붓글씨를 써서 원고를 만들었다. 원고를 모아 제본 떠서 모든 친척들에게 돌렸다. 서울서 직장 생활하던 때라 아빠가 만든 원본은 보지 못했고, 돌아가신 후에서야 복사본 두 권만 내 손에 들어왔다.
팔순이 넘어서 시작했던 작업인데도, 어쩜 저리 정갈하고 힘 있는 필체인지. 서예대회 나가서 상 받았다며 왔던 전화. 바쁘다는 핑계로 제주로 내려가지 못해 그 작품 사진도 없다. 붓글씨 써서 병풍을 만들어 친척들에게 선물했는데, 정작 나는 아빠가 써 놓은 붓글씨 한 점이 없다. 집안 족보를 손봐야 한다면 수년간 족보를 수정하고 수정했던 아빠, 그 족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토록 기록하느라 애썼던 아빠, 아빠의 기록물을 기록하지 않았던 딸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먹먹해진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두 권이라도 있어서.
#북적북적11기 #라이트라이팅 #라라크루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