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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Jul 07. 2023

진화와 기진의 여로

<<제 14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중 <성혜령, 버섯농장>

작가는 부모의 부가 그대로 자식에게 세습됨으로써 계층화 점차 견고지는 현진화와 기진의 일상으로 보여준다. 진화는 십 년째 다니는 직장에서 일은 많아졌지만 오르지 않는 월급에 젊은 사장 욕을 줄기차게 할지언정, 쉽사리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게 없는 는 억척스럽고 책임감이 강하다. 반면, 부모님이 남겨준 집과 차, 오피스텔의 임대소득, 꽤 많은 보험금이 있는 기진은 일자리가 급하지 않다.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어 하나 친구의 어려움엔 어떻게든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벌어지는 틈, 그 틈을 메울 생각이 전혀 없는 기진과 그런 그가 야속한 진화는 공통분모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다름에서 출발한 긴장은 여정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전 남자친구 지인의 명의도용으로 육백여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된 진화와 기진은 길을 나섰다. 돈이 없다던 그 남자의 아버지는 최신형 세단을 타고 사라졌다. 그를 미행하다 찾은 버섯농장. 이 순한 구성에 작가가 곳곳에 숨겨놓은 장치는 지뢰밭을 연상케 한다. 버섯 농장에서 바닥에 모로 쓰러졌던 이름 모를 그 남자의 죽음, 그 죽음이 돌연사 인지, 살인인지 알 길이 없다.


이 소설 속에는 여러 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진화와 기진에게만 이름을 부여했다. 진화는 어떤 의미일까? 책임을 안 지려던 그 남자를 죽여서라도 문제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의미의 진화인가? 아니면, 그 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변화한다는 진화인가? 기진은 가진 자를 대변하는 인물인데, 이상하게 기운이 다한 사람처럼 매사에 힘이 없다. 그래서 '기운이 다하여 힘이 없는'의 기진을 따온 것인가? 왜 이름을 진화와 기진으로 지었을까?


그 외 등장인물은 세탁소 주인, 일 년 정도 만났던 전 남자친구, 군대에서 알게 된 동생(명의도용자), 남자의 아버지, 기진의 부모님, 진화의 부모님, 참외 파는 아줌마 등 이름 대신 정황 설명만 있다. 마치 영화 엔딩 크레디트 엑스트라처럼. 저자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로드무비처럼 읽히길 바랐다"라고 인터뷰했다. 이것이 다른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주지 않은 이유일까? (출처: cosmopolitan 2023.04.10)


두 여자가 주인공인 로드무비라?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 작 <델마와 루이스>가 바로 떠오른다. 루이스가 우발적으로 델마를 강간하려던 남자를 총으로 죽이면서 여행은 도주로 바뀐다. 절벽을 향해 델마와 루이스가 돌진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죽은 남자와 그 남자를 묻은 진화와 기진에게 결말이 없는 것처럼. 혹시 '로드무비처럼 읽히길 바랐다'는 작가의 마음, 그게 다가 아닐까? 여행길에 정답이 있던가? 인생에 답이 없는 것처럼. 그저 이 글을 읽기 전과 후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 딱 그만큼.



설왕설래 동아리 (내 인생 첫 번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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