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클럽에서 일한 지 일 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처음부터 디너 서비스 담당으로 채용됐다. 같이 일하는 애들과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나보다 육 개월 먼저 취직된 열 살 어린 녀석이 언제부터인가 보스놀이에 빠졌는지 나를 아랫사람 부리듯 했다.
첨엔 승진했나 싶었다. 날이 갈수록 하는 행태가 웃기지도 않아 총괄 셰프에게 물었더니, 그 녀석 승진 명단에 없었다. 거의 일 년 가까이 보스 놀이에 심취한 그 녀석을 봐줬다. 문제는 어제 처음으로 세프 세명 모두 오프였던 거다. 누가하나 책임자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임자가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발적 보스가 된 이시키가 선을 넘는데,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세프들도 저렇게 무례하게 일을 시키진 않는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참았는데, 마지막 오더에 빡쳤다.
양상추 가지러 냉장고로 가려는데 내게 소리를 빽질렀다. "스. 발. 노. 므. 스. 키"
후드 돌아가는 소리에 뭐라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짜증을 만 퍼센트 내면서 소리 지르는 걸 모를 수가 있나. 제대로 빡쳤던 나는 일 년 반동안 보여주지 않던 노여움을 담아 "What are you talking about?" 내질렀다. 이 시키 갑자기 깨깽이네. 얼마 있지 않아서 "I'm sorry"란다. 그래. 니가 쏘리 할 상황 맞지 지금.
마지막 오더 끝나고, 내가 말했다. 나 오늘 상당히 열받았으니, 너 나랑 얘기 좀 하자고.
"You're not my boss, I do not work for you, work with you."라고 말하니, 자기도 안단다. 그래 아는 놈이 이따위로 행동한다고 괘씸하기가!!! 그다음이 더 가관. 미안하다며, 약 올리는 어조로 "Then, what do you want me to do"란다. 햐.... 뭐 이런 시키가 다 있지?
내가 이런 놈에게 뭘 바라겠는가! "야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시키야!" 이를 악물며 말했더니, 아까 미안하다고 했단다. 그래 맞다. 니가 쏘리 하다 했다. 니가 윈이다.
여하튼 같이 일할 사이라 계속 참았는데, 내뱉으니 그나마 속이 나아졌다. 클로징 하고 있는데 와서 사근사근하게 이것저것 묻는다. 자기도 자기가 무례하게 군거 안다며 미안하단다. 셰프들 없어서 그랬다며 핑계를 대긴 했으나... 이 정도면 이놈 성질에 많이 접어 들어온 걸 안다. 이놈 시키야! 아까부터 진작에 그랬어야지.
천장 공사 때문에 식기류, 도구 모두 다 랩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시간 내내 같이 랩으로 돌돌 말면서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그냥 두면 "쟤는 무례히 굴어도 괜찮아"가 된다. 관계 유지를 위해 참아왔는데, 내 잘못이었다. 제일 처음 무례함이 나왔을 때 단호히 정면승부 해야 했다.
너, 이놈 시키 또 그럼 이 누나가 가만 안 둔다.
백일 쓰기/ 마흔여섯째 날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