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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Sep 25. 2015

새끼 손가락

당신과 함께 발 맞추어 걸을게!

스물,  스물둘.

우린 그렇게 처음 만났다.

처음엔 그냥 얼굴 아는 사이

그리고는 어쩌다 좀 친해진 오빠 동생

어느 날 보니 소울 메이트...

그렇게 세월을 채워가다가

어느 덧 연인이 되어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거기에 손가락 하나를 더하고는

부부가 되었다.


연극하면서 만난 우리 부부는 결혼이라는 대장정 여행을 떠나기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서른이 되던 해

칠순을 넘기신 아버지, 주변 친구들의 결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서른한 살을 넘기지 않고 무조건 누구 하고 든 결혼이라는 것을 하겠다며 지금의 신랑에게 어깃장을 놓았다.

순진했던 것일까? 어리석었던 것일까? 모든 불안이 결혼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의 나의 신랑.

결혼하기 위한 준비는커녕 자신의 나아갈 길 또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나와 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잔인한 제안을 했고

그는 나와 함께를 택하며 꿈을 버렸다.

그리고는 그토록 사랑한 배우의 삶을 접은 후 생활전선에 바로 뛰어들었고

나의 고집, 나의 뜻대로...

서른 하나. 결혼을 했다.


꿈꾸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먹고살기 바빴고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꿈까지 버리고 가장이라는 책임을 다 하려는 신랑의 회사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하루 서너 시간을 자고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 회사생활로 좀비가 되어갔다.

빠듯한 살림살이,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현실은 잘 하려고 발버둥 칠 수록 늪처럼 우리 삶을 빨아들였다.


신혼 2년이란 시간을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조차 회사 업무로 시달리다 지친 신랑을 보면서

결혼 다음으로 무모한 제안을 했다.


 "그만둘래?"

  "..."

  "그만 둬. 일!   

  우리 아직 젊고 건강하잖아. 다시 시작하자."


사실 당장 먹고살 길이 걱정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어떻게든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삼 개월 후 신랑은 직장을 정리했다.


우리는 정신없이 올라탄 삶이란 기차에서 숨을 고르고

어느 칸에 앉았는지 어디로 가는 중인지 얼마큼 왔는지 점검해 보기로 했다. 


신랑과 큰 맘 먹고 22일간의 여행을 계획했다.

유럽으로 떠나기로 했다.

최대한 멀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단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어서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기차는 놓치지 않을까? 길은 잘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우리는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파리를 마지막으로 하는 여정.

나의 염려 따위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신랑은 내비게이션처럼 일정에 따라 길을 척척 찾아냈다.


하이델베르크의 한적한 강길을 걷고

뮌헨의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아무 생각 안 하기' 하며 시간 보내고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자유로운 영혼을 입어 취해도 보고

잘츠캄머굿의 풍광은 우리를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속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향긋한 와인과 치즈는 입을 즐겁게 했고

그곳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가는 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이 날 만큼 붙들고 싶은 순간들을 선물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을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은 현실인지 꿈인지 착각하게 만들 만큼

비현실적인 장관을 뽐내었다.

파리에서는 며칠 동안 파리지엥으로 살아보기에 도전했다.

에펠과 세느강, 파리를 대표하는 모든 아름다움에 목매기 보다는

그저 무심하게 늘 곁에 두고 있던 화분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그것들이 뿜어내는 공기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느꼈다.


완벽하고 완전했던 우리의 여행.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을 안겨준 하루가 있다.


스위스 루체른이라는 도시에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호수만 바라보겠노라 나름의 계획을 세웠던 날이다.

"유람선이나 탈까? 유로패스 있으면 공짜래."

하고 신랑에게 무심코 말을 건넸다.

사실 이미 십 여일을 걷고 또 걸어서 육체적으로 살짝 지친 상태였기에 정말 그냥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신랑이

"그래. 그럼 기왕 유람선 타는 거 리기산까지 다녀오자."

라고 덥석 물며 답했다.

한국에서 나름 알아보고 계획하고 짜 온 일정대로 움직여 왔었다.

그런데 리기산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우리 리기산은 하나도 공부 안 했는데?"

"그냥 가 보는 거지."

신랑의 'Just Go'라는 주문에 홀려서 유람선을 타고 리기산을 오르기 위해 다른 선착장으로 향했다.


리기 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 작은 기차 같은 쿨룸을 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마치 구름 위를 나는 기차를 탄 듯했고

이내 신비로운 리기 산의 장관에 빨려 들어갔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가만히 리기를 느꼈다.


한참을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타야 하는 쿨룸을 놓치고 말았다.

나름 난감한 사고였다.

여분의 돈도 없는데 해가지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으슥해질 산 속에서 노숙을 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엄청난 카드 빚을 만들 리기 정상의 최고급 호텔에 묵어야 하는

어느 하나도 최선이 아닌 선택만 남아있었다.

갑자기 다급해진 우리 부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니? 혹시 너희 기차 놓친 거니? 하하하

너무 당황하지 말고 오늘 이 곳 호텔에서 묵는 것은 어때?

여기 매우 좋아.

이렇게 멋진 경관에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네. 하지만 저희에겐 너무 비싼 호텔이에요. ㅎㅎㅎ"


노부부는 우리에게 호텔 직원이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리셉션으로 안내했다.


다행히도 산 중턱까지 가는 쿨룸 막차가 있고 그곳에서 케이블을 타고 육지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역으로 가서 숙소가 있는 루체른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매우 복잡하지만

유일한 방법이 있었다.

혼이 나간 우리에게 두손 꼭 붙들고 편안한 미소로 다가와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준 노부부.

어쩌면 미래의 신랑과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현재의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해 주기 위해

찾아와 준 것은 아닐까?

노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리기의 마지막 꼬마열차 쿨룸에 올랐다.

다시 정신을 챙기고 나니 또 다른 리기의 얼굴이 우리에게 따뜻한 작별인사를 했다.

세상의 붉은 빛의 모든 아름다움은 다 쏟아부은 것처럼 리기와 리기를 애워싼 공기 그리고 저 아래 보이는

호수를 품은 마을까지도 노을이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또 한 번 넋을 잃었고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어쩌면 생애 두 번은 오지 못할지도 모를 이곳의 기억을

한 조각도 놓치지 않으려고 가만히 온몸 구석구석에 새기고 있었다.

그렇게 계획하지 않았던 뜻밖의 여정인 리기 산이 우리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신랑과 아주 긴 여행을 계획했고 막 여행 길에 올랐다.

하지만 도착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생각보다 모든 짐을 가방에 잘 꾸리지도 못했지만

중간중간 필요한 것은 경유지에서 채워가면 될 것이다.

처음 가 보는 곳이라 낯설고 두려움도 있지만

또 다른 좋은 여행자를 만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도착지까지 가는 동안 뜻밖의 행선지를 거치게 될 수도 있고

그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혹 여행 중에 마주하게 될 난감한 상황에도

부딪치면 어디에든 답은 있으리라.

무엇보다 나의 손을 꼭 잡은 신랑이 함께하고

길을 잘 찾아서 아주 멋진 곳으로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함께 도착지에서 나눌 추억이 이만큼 쌓여있겠지...


당신이랑 이 여행 꼭 완주하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할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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