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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Sep 30. 2015

인턴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신랑과 결혼하고 처음으로 영화관을 갔다.(우리는 결혼 4년 차 신혼부부)

분명 엊그제 결혼한 것 같은데 영화관 한 번 못 가보고 3년이 지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예매하려는데 언제 이렇게 영화 관람 가격이 올랐는지...

몇 해 전만 해도 이래저래 할인도 많이 되었는데 고스란히 돈을 다 내고 나니

'이젠 영화도 아무 때나 못 보겠다.' 싶더라.

그 뿐만이 아니다 한껏 들떠서 팝콘에 오징어에 닥치는 대로 먹겠다며 스낵코너에 줄을 섰는데

어떤 세트를 고를 것인지부터 이것저것 결정할 것이 많아서 혼났다. 

얼마 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갔을 때 주문했던 대로

달콤한 맛, 그냥 맛, 치즈 맛? 정도의 팝콘을 기억하고

"치즈 맛이랑 달콤한 맛이요."라고 했더니

뿌려먹는 가루를 고르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ㅜ.ㅜ)

아무튼 가까스로 주문을 마쳤지만 영화도 보기 전에 혼이 나갔다.

어리바리한 우리를 반은 짜증스럽게 반은 신기하게 보는 직원 언니를 보며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어려움을 느끼실 어르신들의 마음이 아주 조금 이해됐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관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열심히 주문해서 사온 팝콘과 오징어를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영화 시작하고서 "와그작 와그작"씹어 먹는 소리 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면서...

십 분 만에 팝콘 큰 통과 버터구이 오징어를 꿀꺽하고 음료까지 다 흡입하고서는

얌전히 앉아서 영화의 첫 장면을 맞이했다.


우리가 보게 된 영화는 '인턴'.

70대 한 남자가 아주 자유분방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진취적인 회사에

우연히 길을 가다가 본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고

당당히 인턴으로 합격하여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남자는 젊은 여자 사장의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 개인의 삶, 관계에 대해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젊지만 18개월 만에 엄청난 규모로 회사를 키워낸 성공한 사장인 여자,

삶의 많은 일들을 이미 경험하고 은퇴했을 지금은 다시 인턴이 된 남자.


여자는 회사에서는 많은 직원을 이끄는 성공한 사장이지만

삶은 아직 미숙함을 보이는 인턴과 같은 모습이다.

남자는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서툰 인턴이지만

나이에 입혀진 숫자만큼이나 쌓여온 내공으로

회사 생활의 여러 면에서 노련함을 보이고

이내 다른 직원들의 염려와 달리 멋지게 적응해 나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가 계속 떠올랐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눈을 뜨시고

정성스럽게 면도하고 머리를 만지신 후

잘 다려진 셔츠와 바지를 입고서

아침을 기다리는 동안 종이신문을 완독 하시는

나에겐 영원히 멋진 신사 우리 아빠.


그 순간 며칠 전 나눈 아빠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빠가 어느 날, 하시던 일을 곧 정리하게 될 것 같다시길래

"아빠! 그래요. 이젠 아빠 연세도 있는데 여행이나 다니시면서 푹 쉬세요.

아빠 연세까지 일을 하셨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셔."라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말을 위로라고 던진 내가 한심했다.

지금까지 가족들 먹이고 입히려 열심을 다 하시면서 수십 년을 해 오신 일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벗이 되었을 것이고 아빠의 삶의 일부일텐데

그만 정리하시게 될 아버지의 쓸쓸하고 허전할 마음을 

순간 조금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영화 속 남자도 인턴이지만 자신의 일에 행복을 느끼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실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존재로 일을 한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70세로 나오는 남자를 단 한 번도 '노인'이라고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보다 세월을 4년이나 더 보태야 하는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미 스스로 아빠를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쉬시기를 바라며

일을 한다는 것은 어울리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듯 노인으로 만들어 벼렸지만 

아빠가 원하시는 한 모든 일은 가능하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행복감과 존재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도 인턴이라는 기간을 거치고서 본격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고

사랑도 더 멋지게 전달할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삶을 인턴이란 시기와 본격의 시기로 나눌 수 없지만

매 순간 우리가 맞닥들이게 되는 '지금 여기'는 치열한 인턴의 시기이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처음 겪는 인턴의 시기 일 뿐.

결국 잘 다듬어진 완성된 시간은 가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일지 모른다.

결국 한 번도 완성된 순간을 누리지 못하지만

각자 어떤 식으로든 완성된 삶으로 죽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완벽하고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찰나가 가지는 아쉬움, 소중함, 연약함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디서든 늘 인턴처럼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많은 분들께

아름답다 말하고 싶다.

또한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나가는 아버지 세대에게 파이팅을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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