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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Aug 05. 2018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실루엣, 오사카(Osaka)

in Japan

  내가 스콧 니어링을 만난 건 행운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 중 한 편이 되었듯이,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 되었고 아울러 그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우연히 찾아왔다. 우연이라는 건 얼마나 놀라운 우연의 산물인가. 그럼에도 우연도 따지고 보면 유사한 색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우연이라고 쓰고 필연이라고 읽고 싶어진다. 그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쉬어가는 호흡의 장면들과 스콧 니어링이 살았던 느린 삶이 비슷하고 그 삶의 속도를 함께 맞춘 헬렌 니어링이라는 동반자의 인생이 그렇다. 그리고 그 삶들로부터 내 안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한 부분을 끄집어 낼 수 있었으니 우연도 사실은 그냥 넘겨볼 일은 아니다. 좀 양보해보면 우리는 수많은 만남 중에 우리 속에 내재한 감정에 들러붙는 것들을 따로 떼어내어 긴 꼬챙이로 꼬지 끼우는 작업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의 한 조각으로 모자이크 하는 지도. 

    

[그림 출처: 각각 YES24 / DAUM]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샜다. 사실 내가 스콧 니어링으로부터 가장 감명받은 부분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100세 되던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했다. 이 정도면 카뮈가 말한 철학적 자살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삶과 죽음을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은 것이라고. 육지가 삶이고 수평선 저 쪽이 죽음이라고 볼 때, 배와 같은 우리의 인생이 육지에서 수평선 저 쪽으로 멀리 떠나가고, 결국 점이 되어 사라져버릴 때 우리는 이승을 떠나 저승의 세계로 가는 것이지만, 수평선 저 너머 세계에서 볼 때 그것은 저승의 세계에서 이승의 세계로 다시 넘어오는 것이라고.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인가.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삶과 죽음이 붙어있음을 깨달았다.     


  그 전에는 사실 장례식장이나 상가집에 가는 것은 불편했다. 불운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는 자리겠지만, 때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들 앞에서 두 번 절을 하는 것이 생경하기도 하였다. 그냥 문화로 여겼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죽음을 상징하는 것들, 이를테면 무덤이나 향이나 장례식은 마지못해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런 내가 스콧 니어링의 글을 읽고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을 보았다. 그전까지는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이 하나의 긴 곡선으로 보였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도 삶이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더 이상 부대끼지 아니하였다.     


  유럽에서 본 많은 무덤들과 비석들 그 옆에 서서 사진을 찍고 비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00년이나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무서움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아련함으로 다가왔다. 무덤을 보면 꼭 하늘도 한 번 쳐다보게 되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가끔은 한숨도 가끔은 서운함도 내뱉었다. 그 모르는 자들의 삶들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는 인물들의 무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덤 옆에 앉아 마치 가족이나 되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느 순간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덤은 내 여행 일정에 포함되었다. 삶이 정착된 곳이라는 의미로서의 안정감 때문일까. 거기서 새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위로 같은 감정 때문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책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찾아가는 길의 여정은 그 곳, 가마쿠라에서 시작되어야만 했다. 그렇다. 가마쿠라는 1185년에서 1333년까지 존속한 가마쿠라 막부의 그 가마쿠라가 맞다. 가마쿠라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여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고 바다를 가진 곳이다. 당시 도교의 예술가들에게 있어 가마쿠라는 조용하게 창작생활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피처가 될 수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곳에서 후기 대표작인 『천우학』과 『산소리』를 썼다고 한다. 그는 1937년 그곳에 이주한 이후 1972년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할 때까지 35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의 무덤도 가마쿠라에 있다.     


  아니면 그를 만나기 위해 일본 니가타현의 유자와 마을에 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곳엔 그가 설국을 집필한 여관 다카한도 있고 그를 위한 전시관도 있다. 겨울에 가면 온천욕을 하거나 미국시인 John G. Whittier의 시 ‘Snow bound'처럼 큰 눈 속에 갇혀 진짜 설국을 느껴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상할수록 그리워지는 여자, 아름다운 거머리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듯한 주름이 잡히는 입술을 가진 여자, 고마코를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고마코를 생각하면 무의식적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에서 열연한 이케와키 치즈루라는 여배우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책의 상상력이 전하는 영화의 현실감이다.  

   

[그림출처: DAUM]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했다. 다물고 있을 때 조차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어 만약 주름이 있거나 색이 나쁘면 불결하게 보일 텐데 그렇진 않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지도 처지지도 않아 일부러 곧게 그린 듯한 눈은 뭔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짧은 털이 가득 돋아난 흘러내리는 눈썹이 이를 알맞게 감싸주고 있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설국 중에서)     


  그러나 난 가마쿠라도, 니가타현도 아닌 오사카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조우한다. 우연치고는 놀랍다. 원래 그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에 간 것은 아니었다. 오사카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다. 여행의 목적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먹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오사카에서는 타코야끼나 오코노미야끼, 여러 가지 종류의 라멘이나 스시를 먹을 수 있다. 놀고 즐길거리를 찾기에도 오사카는 괜찮다. 도톤보리 에비스바시 다리 위에서 글리코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야경을 즐기는 사람도 많고 도톤보리 리버크루즈를 타고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도 많다. 잡화점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하거나 인근 에비스바시스지, 신사이바시스지 상점가에서 다양한 물건도 살 수 있다. 난바역 근처에서 머문다면 난바시티나 난바파크스같은 대형쇼핑몰에 들려도 좋고 전자제품 상가 덴덴타운이나 170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오사카의 부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쿠로몬시장에 가보아도 좋다.    

 

이츠란 라멘

  

도톤보리 야경 / 글리코상

  오사카는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도톤보리를 조금 벗어나면 오사카 속 작은 한국이라 불리는 쓰루하시 시장에 가서 강제징용의 슬픈 역사와 대면해볼 수도 있고 쇼토쿠 태자와 관련 있는 사찰 시텐노지에서 백제의 건축양식을 볼 수도 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저팬이나 일본 최대의 수족관 가이유칸도 취향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오사카는 인근 도시 교토나 고베를 함께 묶어 여행하기에도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가진다.     


  오사카성도 꼭 가보아야 할 곳이다. 멋진 사진 촬영을 위한 팁을 드리면 오사카성 천수각에 올라가기 전에 니시노마루 정원에 들려보길 바란다.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나뭇잎을 전경으로 오사카성을 후경으로 두면 나뭇잎 액자의 멋진 사진이 완성된다. 가보면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오사카성을 구경하기 전에는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불멸의 진실이다. 그리고 시간도 넉넉히 확보하길 바란다. 족히 반나절도 짧게 느껴진다. 인증샷만 찍고 돌아서는 여행은 훗날 아무런 감동도 주질 않는다. 직접 만져보고 걸어보고 느껴보는 게 좋다.     

니시노마루 정원에서 본 오사카성

  이왕 오사카성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그냥 돌아서지 말고 이곳으로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 생가터를 보고 우메다 방향으로 여정을 짤 수가 있다. 여행책자식 설명을 덧붙이면 오사카성 인근 다니마치욘초메 역(T23, C18)에서 다니마치선(보라색)을 타고 정류장 2개를 지난 후 미나미모리마치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그리고 구글을 켜고나 혹은 길을 묻거나 오사카 텐만구 신사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자. 텐만구 신사는 650년에 건립된 아주 오래된 신사로서 대학입시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곳인데,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자식 사랑을 위한 간절함은 비슷한 것 같다.  


텐만구 신사

   

  신사를 보았다면 신사 정문 근처에 있는 생가터를 찾아가자. 찾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지만 그리 쉬운 것도 아니다. 나는 결국 아날로그 방식으로 물어서 찾을 수 있었다. 한 친절한, 중년이 낙엽처럼 지나버린 일본 남자가 친히 그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서로가 통하지 않는 말로 의사소통하다가 - 그는 일본말로, 나는 영어로 - 나의 목적지를 그가 알아챘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이름은 실로 위대했다.     


  찾기가 애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길 옆에 한 평 남짓한 공간 정도로 움푹 들어간 곳에 그가 여기서 태어났다는 표지석만 달랑 서 있을 뿐이었다. 생가터라고 해서 우아하거나 혹은 호젓하거나 그런 단아한 집채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표지석 뒤편에는 신식 건물을 짓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애절한 마음으로 나는 사진을 찍는다.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오직 『설국』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만 만난 사람의 흔적을 나는 아련하게 바라다보았다. 이리 찍어도 저리 찍어도 사진의 모양새가 대단할 순 없다. 애초에 이런 것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생가터 표지석

  그래도 내겐 아름답다. 가끔은 화려한 것 보다는 작고 보잘 것 없어서 아름다운 법이다. 그것은 허무가 품은 아름다움이다. 허무에도 스토리가 들어있다. 그를 만난 건 우연이며 인연이다. 약 50여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남자와 겨우 책 한권으로 만났고 그가 태어나 2년 정도 살았던 곳에서 겨우 나는 그의 흔적을 사진에 담았지만 나는 그를 만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뭐라고 말 할 순 없지만 진한 감정이 가슴 위에 내려앉는다. 다음에는 가마쿠라에 가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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