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te Fall Jul 28. 2019

카르페 디엠, 런던(London)

in England

  서유럽 3개국 여행 패키지 상품에는 대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그리고 이탈리아 몇 개 도시가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여행사에 따라 스위스를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때 빠지는 나라는 거의 영국이다. 이 정도면 찬밥 신세다. 십여 년 전 영국을 포함한 3개국 여행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런던은 여행사에서도 무시하고 현지 가이드도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그냥 끼워넣기 식의 일정 중의 한 곳으로 비춰졌다. 일정은 달랑 이틀에 불과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멀리 빅벤을 두고 템즈강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고 후다닥 영국박물관으로 이동해 세 시간여를 급하게 둘러다보니 런던의 매력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었다. 가이드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빨리 파리로 가세요. 여긴 볼 게 없어요.     


  그러나 런던은 그런 곳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패키지여행에 특화된 도시가 아니다. 하기야 패키지여행에 특화된 도시는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모든 도시는 나름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를 사랑하는 법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머무르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보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두 달 못 되게 런던에 머물러 볼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더랬다. 이국의 도시를 두 번 방문해보는 의미 정도였지만 비행기가 히드로 공항에 착륙할 때 잠시 설레기는 했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반짝이는 도시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은 늘 좋다. 기억할 순 없지만 자궁에 착상되는 수정란의 느낌이랄까. 가끔 어지럽기도 하지만 새로운 꿈의 잉태가 저기 있을 테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런던도 머물면 훨씬 더 사랑스러운 도시이다. 꽤 중후한 영국식 영어발음을 듣다보면 희석되었더라도 그 곳은 신사의 나라도 맞다. 어디를 가나 즐길 거리, 볼거리가 넘쳐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다. 런던은 카르페 디엠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도시인 것이다. 이 쯤 되면 그 때 그 가이드가 안쓰러워진다.     


  런던에서는 해보아야 할 것이 많다. 그 중 내 생각에 꼭 해보아야 할 네 가지를 추려보면 이렇다.     


  펍(pub)에서 맥주 마시기.

  개인적으로 펍이라는 말이 바(bar)라는 말보다 참 좋다. 펍이라고 발음하면 맥주 거품이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 것 같은데, 바라고 하면 맥주가 다 빠져나갈 것 같다. 영국과 미국의 발음 차이 그 이상이다.     


  뮤지컬 보기.

  뮤지컬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나라에서 영화표 사는 것만큼 쉽다. 그것도 저렴하다.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인근에 있는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에 가면 부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 축구 관람하기.  

  런던에는 10개 이상의 프로축구팀이 있다. 이 정도면 축구 도시가 맞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통의 강호 아스날, 신흥 명문 첼시, 손흥민의 토트넘 외에도 크리스탈 팰리스, 웨스트햄 등의 축구팀이 각 지역마다 포진해 있다. 축구덕후라면 반드시 직관해야 하고 축구를 싫어하더라도 클럽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경기장을 둘러보면 비교적 재미가 쏠쏠하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영국인들에겐 삶 그 자체이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현지인의 삶으로 침투하는 것이라면 축구 구경은 그들을 이해하는 특별한 렌즈가 된다.


  미술관 및 박물관 투어.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ary), 좋은 의미로 세계 곳곳의 유물을 골고루 볼 수 있는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내가 사랑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많아 매니아들이 방문하는 코톨드 갤러리(The Courtauld Galary) 등 미술관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번거로울 정도로 많다. 더군다나 대부분 무료이다. 그림이 좋은 사람들은 한 달 동안 그림 구경만 해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게 아닌 것은 다 안다. 패키지여행으로 세 시간이나 반나절이 주어지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파도가 된다. 파도가 되지 않는 법은 머무르며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가끔은 그래도 된다.     


  그 외에도 런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다. 홍차 마셔보기, 하이드 파크(Hyde Park) 등에서의 공원 걷기,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등에서 쇼핑하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튜브(Tube)라는 지하철 타보기, 템즈(The River Thames) 강 따라 걸어보기, 카톨릭신자가 아니더라도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등 에서 예배 참여해보기. 어떤가. 할 게 너무 많지 않은가.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니라, 해가 자주 보이지 않는 나라이지만 그것도 매력 있다. 회색빛 공기가 감싸주는 우울함조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경쾌함과 묘하게 배합된다. 또 하나 조금 아쉬울 수도 있는 점이 피시 앤 칩스로 대표되는 뻔한 영국 음식이지만 메트로폴리탄 도시답게 마음만 먹으면 세계 곳곳의 음식을 어디서나 먹어볼 수 있으니 그것도 괜찮다. 물가가 비싸다지만 스위스나 북유럽을 생각하면 그것도 감내할 만하다. 즐길 게 많으면 장점의 눈꺼풀이 씌여 모든 게 용서된다. 사랑스러운 애인의 치아 사이에 낀 고춧가루가 뭐 대수인가.     


  엄밀히 말해 영국 런던은 틀린 말이다. 잉글랜드 런던이 맞다. 실제로 우리가 말하는 영국, 즉 브리튼(Britain)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나누어진다. 서로 색깔이 다르고 언어적 액센트도 딴 나라 같다. 대층 뭉뚱그려 한 나라처럼 말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각각을 인정하는 겸허한 존중이 필요하다. 특히 스코틀랜드에 가서는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다. 그냥 서로 다른 나라, 심지어 배척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래도 저마다의 영국들이 각각의 자존감을 뽐내지만 정치, 경제, 역사, 문화적으로 볼 때 잉글랜드의 위상은 대단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나라답게 수많은 작가들이 활동해왔다. 토머스 하디, 찰스 디킨즈, 버지니아 울프,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등 많은 작가들이 영문학사에 편입되어 있다. 이 작가들 외에도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잉글랜드로 건너와 활동한 작가들도 무궁무진하다. 여기에서는 도리스 레싱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리스 레싱은 이란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성장했고 후에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녀의 작품 『런던 스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서술한 여행자로서의 런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작품은 런던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 배경이 꼭 런던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서울이든 뉴욕이든 현대인들의 삶은 복잡하고 잔인하고 세속적일테니. 그럼에도 이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책을 읽다보면 런던 사람들의 삶을 애정있게 관찰하는 저자의 스케치와 스토리부터 런던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림출처: YES 24]

  책을 읽다가 우연히 자신이 걸어보았던 런던의 어느 도로나 장소를 만나면 그 반가움은 뭐랄까, 섬광 같은 환한 빛줄기로 인해 눈이 순간 시큼해져 두 눈이 감겨버리고 추억을 떠올려보는, 잠시 잊고 지낸 도시와 다시 조우해보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 산다는 게 행복해지려면 이런 우연이 기여하는 기회가 가끔씩은 찾아와야 하는 것이다.     


  PS. 여유가 되면 그녀의 또 다른 책 『다섯째 아이』도 읽어보자.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꿈이라는 건 확고하든 막연하든 우리의 손을 떠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실루엣, 오사카(Osak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