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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May 06. 2019

나이 먹는다는 것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로부터

  조르바는 마음이 따뜻한 짐승이다. 그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짐승처럼 욕망대로 산다.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사랑의 대상도 음식의 종류도 뉠 곳도 그의 자유의지대로 선택된다. 생각과 이성을 내팽겨치고 행동과 본능을 우선시한다. 짐승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따스한 가슴이 있다. 인간이 정한 법과 질서를 넘어선 보편적 정의를 그는 실천한다.  

   

  그는 싫어하겠지만, 그를 억지로 철학적 범주에 넣으면 실존주의자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세상에 던져졌고 마음대로 살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종교나 법률의 금기를 비웃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니 말이다. 『이방인』의 뫼르소 같은 냄새도 나지만 뫼르소에 비해 그는 훨씬 타인과 긴밀하게 소통한다. 그의 욕망이 그를 땅 위에다 발을 붙여 살게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자유롭다. 지중해와 크레타섬. 그에겐 특정 장소들조차도 일말의 구속도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중해와 크레타섬은 그가 더 자유로워지는 데, 아무 걱정 없이 사는 데 천혜의 혜택임이 틀림없다. 이건 뭐, 장 그르니에나 알베르 카뮈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중해의 충만한 삶의 조건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지상의 천국이라고 느끼게 할 것이다. 크레타섬의 조르바는 한 마디로 최적의 조건에서의 최적의 자유로운 영혼인 셈이다.     


  이런 조르바에게도, 아니 이런 조르바이니깐 그에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다. 그것은 진시황제도 피해갈 수 없는 늙음이다. 나이 먹어가는 것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귀엽기조차 하다.     


  그런데 내가 아주 겁이 나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두목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딱 한 가지 두려운 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마음이 편치 못해요. 두목, 겁나는 게 무엇인고 하니 나이 먹는 것이에요. 하늘이 우리를 지키소서!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끽 하고 죽고 촛불이 꺼지고, 뭐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나 늙는다는 건 창피한 노릇입니다.
  나이 먹어 가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예사로 창피한 노릇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도록 별 짓을 다하는 거지요. 뛰고 춤출 때는 등이 아프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뛰고 춤춥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세상이 빙글빙글 돕니다만 나는 주저앉지 않아요. 나는 멀쩡한 듯이 뛰고 놉니다. 땀이 나서 바닷물에라도 뛰어들고 나면 감기게 걸려 기침이 나옵니다. 콜록콜록. 그러나 두목, 나는 창피해서 기침을 꾹꾹 밀어 넣고 맙니다. 내가 기침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없을 겁니다. 당신은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그러는 줄 아실 겁니다만, 아니에요, 나 혼자 있을 때도 그럽니다. 나는 조르바 앞에서도 창피한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두목? 나는 조르바 앞에서도 창피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르바를 위로한답시고 영화 〈은교〉에 나오는 이적요 시인(박해일 분)의 철퇴같은 명언 - 젊음이 젊은이들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늙음 또한 자신의 잘못으로 받는 형벌이 아니다 -을 들이댈 생각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건 다 쓸데없는 머리에서 나오는 아무 쓸모짝 없는 말장난이라는 소릴 들을 테니.


[그림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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