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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Oct 06. 2019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루앙프라방

in Laos

  루앙프라방은 생각했던 것처럼, 이국적인 프랑스 건물로 그득한 곳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의미의 이국적인 소박함이 내려앉은, 프랑스와는 크게는 상관없어 보이는 시골 느낌이었다. 나는 아마도 좀 더 화려하면서도 육중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기대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실망하여 괜히 왔나, 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일정한 분량의 고졸한 소탈함이 버무려진 도시는 마치 꽤 오래 알아온 것처럼, 정 붙이기에 좋았다.


  우선 역사공부를 조금 하자. 루앙프라방은 라오스(Laos) 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파응움 왕에 의해 란쌍왕국이 건국된 1354년부터 지금의 수도인 비엔티엔으로 천도된 1563년까지 란쌍왕국의 수도였다. 루앙은 위대하다는 뜻이고 프라방(파방)은 황금불상을 의미한다. 파응움 왕은 1356년에 프라방을 스리랑카에서 이 도시로 가져왔다고 한다. 루앙프라방의 원래 이름은 씨앙통(황금의 도시)였으니 이래나 저래나 황금의 도시이다.


  루앙프라방도 무언가를 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외려 그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하늘에서 내려앉은 것 같은 평화와 나른한 여유에 매혹적으로 빠져든다. 멍하게 앉아 잦아들면 황톳빛 메콩강과 칸강과 미소를 머금은 라오스 사람들이 한없이 사랑스러워진다. 시간이 멈추고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 듯한 마을을 걷다가 고즈넉한 사원을 만나 부처님 앞에 겸손하게 앉아 있으면 바람은 멈추고 뜨거운 햇살은 박제되고 곳곳에 들러붙은 습기는 애틋한 눈물이 된다. 이대로 머물면 좋겠다고.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예상하지 못한 배움이 습격할 때 더 낮아지고 더 작아진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그래도 조금 무료하다 싶으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쭈욱 돌아다녀보자. 대충 세워두고 커피 한잔 하고 대충 기대어두고 사원 들러보고 대충 걸터앉아 강을 내려다 보아도 좋다. 자전거는 걷는 것보다 빨라서 좋고 모터사이클보다 느려서 좋다. 걷는 것보다 덜 더워 좋고 모터사이클보다 소리가 작아 좋다. 자전거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출 수 있고 지나가는 풍경이 더디어 가서 좋다.


  언덕보다 조금 높은 곳, 푸씨에 올라가보아도 좋다. 신성한 산이라는 이름답게 루앙프라방이 착하게 내려다보인다. 낯선 곳으로 여행할 때 나무가 아니라 숲 전체가 궁금하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도 괜찮다.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어느 여행작가는 말하던데, 속속들이 도시 구석구석을 알기 전에 전체를 대략적이나마 그려보는 행위는 도시를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전의 전희와 같은 것이리라.

  여행이 단순히 관광을 넘어서, 그 지역의 음식을 넘어서, 더 여행다워 지려면 현지인의 삶에 침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루앙프라방 중심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빠지면 더 라오스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아무래도 이 때는 자전거보다 빠른 모터사이클이 좋겠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중심가를 벗어나서 만날 수 있는 풍경과 현지인들의 모습은, 여행이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정의된다면, 진정한 여행의 이미지처럼 다가온다.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에머랄드빛 꽝시폭포도 좋지만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소박한 카페나 아이스크림 가게나 곳곳의 난전들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비아라오 한 잔 따라주며 앉으라고 손을 끄는 아낙네들. 손흥민이 최고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어떤 아저씨. 수줍어하면서도 호수 같은 눈망울로 다가오는 아이들.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을 만나 피신한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음악들. 모두 모터사이클이 선사한 선물들이다.


  혹시 영어가 좀 된다면, 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주고 싶다면 외국인을 만나 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청년들을 대면해보자. 그 곳에 가면 열망에 찬 학생들이 당신을 에워싸 무언가를 배우려고 말을 걸 것이다. 재능기부라고 하면 낯간지러운 오만함일 것 같다. 그냥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들 중 몇몇을 만나보는 기회로 여기자. 결국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우리는 가끔 얼마나 소중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오소희 작가의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는 책으로 나온 지 10년쯤 되었다. 그래도 이 책은 라오스를, 루앙프라방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작가의 가공되지 않는, 꾸밈없는 프리즘으로 그곳들을 들여다보면 민낯 라오스를 회상해 볼 수도 있겠다. 책과는 달리 지금의 루앙프라방은 외지의 문화 유입으로 그 색깔이 조금 희석되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것은 그들 현지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들의 잘못임을 자각하면 좀 닳아버린 속세의 문화는 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림 출처: YES24]

  우리는 편안하고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 살면서 그들은 그대로 가난하고 누추하게 머물길 바라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 아닐까. 그래도 당신이 생각하는 더 라오스적인 곳이 그립다면 관광객이 없는 오지를 찾아들어가 현지인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 될 것이다. 아니면 지인의 말처럼 스위스를 보고 싶으면 오스트리아에 가보듯, 라오스 대신 미얀마를 가보아도 된다.


  그럼에도 오지라든가 순수라는 것은 라오스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있다는 것, 그것만 받아들이면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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