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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Apr 19. 2020

이니스프리의 고향, 슬라이고(Sligo)

in Ireland (첫 번째 이야기)

  이니스프리(Innisfree)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아모레 퍼시픽에서 출시된 화장품이다.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백화점 1층을 걷다 보면 – 아, 나는 백화점 1층 냄새가 참 좋다 - 혹은 공항 면세점을 기웃거려보면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설화수, 헤라, 샤넬, 시세이도, SK-II, 아이오페, 에뛰드 하우스, 오휘, 이자녹스, 라네즈, 마몽드, 아리따움, 수려한, 에스티 로더, 입생로랑 등등. 막연히 바라보면 차별성을 도시 모르겠다. 쇼핑할 때 어떤 제품을 살지 고민이 되면 나의 원칙은 이렇다. 즉 브랜드를 먼저 선택하는 것. 나의 최애 화장품 브랜드는 이니스프리다. 물론 비싸면 더 좋을 확률이 높겠지만 어떤 화장품이 가장 좋은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감성적인 결정을 내리고 나머지 브랜드에 대해서는 판단중지, 즉 괄호 밖이다. 그러면 쇼핑이 쉬워진다.  

   

  이니스프리에 대한 나의 기울기는 순전히 주관적인 선호도에 기인한다. 이니스프리라는 브랜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대뜸 윌리엄 예이츠(William B. Yeats)의 『이니스프리 호수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공부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세상과 부드럽게 만나는 것이라면, 내가 일찍 예이츠를 알게 된 것은 하나의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 준 계기가 되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다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난파시키기로 유명한 사이렌(Siren)을 알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원더걸스의 멤버였던 선미의 사이렌이라는 노랫말이 더 쏙쏙 들어올 게고 스타벅스의 로고가 사이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커피로 사람들을 홀리려는 스타벅스의 브랜드 이미지를 눈치챌 수 있다. 아마 아모레 퍼시픽은 이니스프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소박한 자연주의 철학을 표방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니스프리 호수섬]

  3연 12행의 시 중에서 1연을 소개하면 이렇다. 영문을 함께 소개하니 각운의 묘미를 느껴보기 바란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욋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두고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리.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무엇이 느껴지는가. 실제 전체 시를 살펴보면 오두막집, 콩밭, 꿀벌통, 귀뚜라미 우는 곳, 반짝이는 별빛,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철썩이는 낮은 물결 등의 시어들이 읽혀진다. 빡빡한 도시의 일상 속에 지쳐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대개 무엇인가.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곳, 인적이 드물고 평화로움이 잔디처럼 내려앉은 곳,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소박한 자연풍경이 아니던가. 실제로 예이츠는 어릴 적 뛰놀았던 슬라이고를 떠나 런던에 머물 때 이니스프리를 그리워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안빈낙도에 대한 향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인 모양이다. 여전히 나는 네온사인 불빛이 넘쳐흐르는 도시를 사랑하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별빛 쏟아지는 풍경을 마주하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시인에 대해 짧게 알아보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 Yeats)는 186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 태어나 1939년 프랑스 로크브륀에 묻혔다.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3년에는 아일랜드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아일랜드 공화국의 상원의원으로 정치를 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가장 아일랜드적인 문화와 정신을 추구하는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림 출처: 다음백과]

  그를 만나고 싶으면 『이니스프리 호수섬』 의 배경이자 그의 어머니의 고향인 슬라이고에 가는 게 맞다. 내가 슬라이고에 가기로 마음 먹은 것도 순전히 예이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니 어쩌면 이니스프리 호도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슬라이고는 아일랜드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다. 더블린을 기준으로 할 때 버스로 4시간 남짓 소요된다. 당일치기도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1박을 추천한다. 그것이 한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더군다나 작은 마을 수준이지만 볼 것들이 흩어져 있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은 –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 택시를 반나절 정도 렌트하는 것이다. 택시로 이니스프리나 예쁜 호수들, 예이츠의 무덤이 있는 드럼클리프(Drumcliffe), 대서양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택시기사와의 의사소통이다. 아일랜드 특유의 방언은 당신이 영어를 곧잘 한다고 해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설탕 속 소금을 찾는 느낌이랄까.

     

[슬라이고 시내]
[슬라이고 시내에 있는 예이츠 메모리얼 빌딩]

  슬라이고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슬라이고는 예이츠 때문에 먹고 산다고. 그의 기념관이 있고 그의 동상이 있고 그의 무덤이 있고 그의 시적 배경이 있고 그의 초상화가 있다. 뭐 그렇다면 더 좋다. 그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고 가면 도시는 온통 당신 것이 된다. 펍에 만난 아이리쉬들은 대개 우리를 반겨주며 여기에 왜 왔느냐고 묻는다. 만약 당신이 그 때, 예이츠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면 당신은 이미 환영을 받을 준비가 된 셈이다. 그토록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던 예이츠 그 사람을 당신이 좋아한다고 하는데 누가 당신을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The Snug라는 펍 – 선술집의 작은 골방이라는 뜻이다- 에서 만난 어떤 아이뤼시는 기네스 혹은 스미딕으로 가득 차 볼록해져버린 내 볼에 키스를 한다. 웰컴 투 슬라이고를 외치며.  

   

[슬라이고 시내에 있는 예이츠 동상]
[슬라이고 시내에 있는 예이츠 벽화]

 

[펍, The Snug]

 이 곳에도 어김없이 강이 흐른다. 유럽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흔히 강을 만난다. 이 곳 슬라이고에서는 개러보그(Garavogue)강이 시내를 관통하고 있다. 아일랜드 중세도시 킬케니(Kilkenny)에서는 노어(Nore)강이 더블린(Dublin)에선 리피(Riffey)강이 그리고 제 2의 도시 코크(Cork)에서는 리(Lee)강이 흐르고 있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도시를 개발하다가 강을 만나면 메워 버리고 도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런 강들을 보면 대비되어 서글픈 생각이 든다. 강을 살려두고 옛 건축물도 살려두고 도로는 좁게 쓰고 가능한 건드리지 아니하면서 개발하는 것이 바로 자연친화적인 게 아닐까.     

[슬라이고 개러보그강]
[아일랜드의 흔한 펍]

  약간 옆으로 새는데, 외국여행을 할 때 펍이나 카페에는 꼭 들려보길 바란다. 그게 여행의 질이나 경험치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현지인을 만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마치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장소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머무르는 여행의 장점이 드러나고 잠시나마 뜨내기가 아닌 마을주민이 되어 보는 것이다. 운 좋으면 담날 일정의 일부가 풍성해질 수도 있다. 생각해보시라.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 폼나게 사진 찍어야 하겠지만,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파리지앵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경험도 아주 오래 각인될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 하는 여행은 외로울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다채로워질 수 있다. 우리 무리가 많으면 현지 사람들은 말을 잘 안 건다. 무리가 많으면 현지인들에게 말을 걸 필요성도 못 느낀다. 자급자족이 완벽하면 물물교환이 필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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