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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May 03. 2020

이니스프리의 고향, 슬라이고(Sligo)

in Ireland(두 번째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로부터 계속)     


  프랑스에 묻힌 예이츠의 시신은 1948년이 되어서야 슬라이고로 돌아왔다. 사후 10여년이 걸린 셈이다. 삶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얼마나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을까. 그는 드럼클리프(Drumcliffe)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세인트 콜롬비아 교회(St. Columba's Parish Church) 안뜰에 누워 있다. 유럽의 교회나 성당에 가 보면 건물 안이나 안뜰에 많은 사람의 무덤이 있다. 그 모양새와 색상이 저마다 달라 죽은 자의 혹은 뒤에 남은 자들의 개성이 유난히 돋보인다. 내가 본 대개의 무덤에는 봉분이 없었다. 예이츠의 무덤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명 시인이라고 화려하거나 크지 않다. 평평하고 낮게 내려앉은 무덤은 비석이 그의 무덤임을 알려준다. 한 두평이면 족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이처럼 겸허한 게 외려 짠하다. 무덤이 작아서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죽은 자들 사이로 비집고 지나가다 보면 산 자의 고독이 느껴진다. 다 저리 된다. 다 이리 사는데.     

[세인트 콜롬비아 교회]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예이츠의 무덤]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시선을 던져라 / 삶과 죽음에 대해 / 말 탄 자여 지나가라. 무슨 뜻일까. 삶과 죽음을 냉정하고 명징하게 직시하고 싶었던 걸까. 의연하게 살고 의연하게 죽는다는 것. 그러면 되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말 탄 자와 말을 섞을 수 있을까. 앞만 보고 바쁘고 빠르게 삶을 사는 자는 삶에 눈길 한 번 던질 시간이 있겠는가. 하물며 죽음이야. 느리고 여유 있게 걸을 때 비로서 예이츠를 대면한다.     


  사실 이 문장은 그가 죽기 직전 남긴 『벤불벤 산 아래서(Under Benbulben)』라는 시 마지막 3행이다. 예이츠는 스스로 이 시어들을 묘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교회 무덤에서 잡힐 듯 보이는 벤불벤 산은 순한 말이 길게 누워있는 듯한 형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는 테이블마운틴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좌우대칭이 더 완벽해 보인다. 그는 시의 제목처럼 벤불벤 산 아래에 묻혔다.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던 곳에서 그는 영면한다.     

[벤불벤 산]

  이니스프리 호수섬은 생각보다 작다. 너무 평범해 보여 감흥도 크게 일지 않는다. 호수 위에 오도마니 떠 있는 작은 섬을 바라보면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상하다. 겨우 이런 작은 섬이 무에 대단하다고 그는 시로 남겼는가. 이것을 보려고 그리 오래 나는 갈망했던가. 실망감이 엄습해왔다.     


  앉아서 호수와 섬을 다시 바라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섬을 기대한 것일까. 놀이공원이나 리조트가 들어찬 화려한 섬? 제주도처럼 큰 섬? 아니면 용암이 흘러내리는 화산섬? 사실 내 마음 속에 이런 섬이 아름다울 거야, 라는 명확한 정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고 나니 섬이 아담하고 예뻤다. 조금 애절하기도 한 작은 섬. 작은 보트를 타고 저리로 올라 오두막 하나 짓고 쏟아지는 별빛을 먹고 살면 카프리섬에 사는 것도 부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지트는 작고 소박해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리틀 왕이 될 수 있다.     

[이니스프리 호수섬]

  사실 어떤 대상이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오려면 대상 그 자체의 미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 속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니스프리 호수섬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는 사실 이니스프리 호수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부르고 싶은데 그 호수는 럭 길(Lough Gill)이라는 엄연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Lough은 호수(lake)라는 뜻이다. 아마 켈트어의 일종인 아일랜드 토착 언어인 게일어일 것 같다. 더블린에 가면 영국에 반대했던 아일랜드 독립투사들의 감옥인 킬마이넘 교도소(Kilmainham gaol)가 있는데 이 때 gaol도 jail이라고 읽는다. 아무튼 럭 길은 위키피디아를 보면 ‘bright or white lake’라는 뜻을 가진다. 그 정도로 맑은 물이란 뜻인가. 시간이 나면 호수 옆에 있는 파크성(Parke's Castle)에 잠시 들러 17세기 로저 파크(Sir Roger Parke)의 집도 한번 둘러보자.     

[파크 성]

  실상 내 마음을 끈 호수는 럭 길이 아니다. 럭 길은 오직 이니스프리를 위해 존재하는 배경과 같은 호수였다. 마치 안도현의 『연어』에서 초록강이 연어들의 배경이 되어주듯이. 외려 그 곳에 가기 전에 들른 글렌카 호수(Glencar Lough)가 진짜 주인공 같은 호수였다. 이 호수는 ‘lake of the glen of the pillar stone’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우리말로 옮겨보면 돌기둥 협곡 호수 쯤 되겠다. 번역하고 보니 어찌 조금 생경하다. 글렌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이 사라지고 만다. 이 호수는 사실 대부분 리트림 주(County Leitrim)에 속해 있고 슬라이고 주에는 조금 걸쳐 있다.     

[글렌카 호수]

  글렌카 호수는 눈부시게 맑았고 깨끗했고 아름다웠다. 이 날은 아일랜드에서는 엄청 운이 좋게도 날씨까지 도와주었다. 아, 완벽한 데칼코마니. 하늘은 저기 위에 있는데 저 아래에도 같은 하늘이 내려앉아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천국이 이 땅에 왕림한 느낌이다. 어떤 카메라 앵글도 모두 화보다. 찍고 찍었는데도 또 찍고 싶은 욕심을 거두기가 어렵다. 아름다움은 눈에다 담아야 하는데, 가슴에다 담아야 하는데, 다 담지 못해 스마트폰 데이터로 저장한다. 결국 이 사진들이 훗날 그 시절이 그리울 때 기억의 열쇠를 작동해 나를 여기로 데려다 줄 테니. 록키 산맥의 루이스 호수(Lake Louise)가 하나의 모아진, 안을 수 있는 화폭이었다면 슬라이고의 글렌카 호수는 뻗어가, 안기고 싶은 화폭이었다.     


  슬라이고가 내게 준 선물은 이니스프리나 예이츠 그 이상이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저마다의 모습들이 마음 따뜻해지는 묘한 동질감을 주었다. 처음 가 본 곳에서 일정한 분량의 낯섦과 적당한 낯익음을 마주하니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던 것이다. 온도차가 존재하지만 바람막이 하나 걸치면 금방 편안해지는 느낌이랄까.     


  대서양이 보이는 Rosses Point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내뻗으며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동상 ‘Waiting On Shore’ 아래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Lost at sea, lost at sea
Or in the evening tide
We loved you, we miss you
May God with you abide.     
[Waiting on shore 조각상]

  바다로 나간 임이 무탈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잘 녹아있다. 아일랜드식 망부석이다. 우리네나 그들이나 사람 사는 곳은 어찌 이리 똑같을까. 슬라이고에서 만난 망부석은 부산 해운대 청사포 마을에 있는 정씨부인의 망부석과 미묘하게 다르면서도 미묘하게 비슷하다. 삶이란 대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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