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도 루틴은 통했다
우여곡절 끝에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혼자였다. 1년이었다.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시험을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소통이 되는 것, 그게 끝이 아니다.'
더 수준 있는 영어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발음, 세련된 표현, 진짜 살아있는 영어. 학교 수업은 실제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학원과 프로그램들을 찾아봤지만 비용이 비싸거나 내 수준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됐다. 버스를 타고 45분, 마운트 로스킬에 있는 학교에서 저렴한 영어 강좌를 운영한다는 것을.
시간 소모가 적지 않았다. 버스로 왕복 한 시간 반, 수업은 하루 한 시간.
그래도 갔다. 처음엔 그래머와 스피킹 두 강좌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배우는 게 많았다. 그리고 두 선생님 모두 한국과 인연이 있는 분들이었다.
스피킹 선생님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대학생 아들을 두셨던 분이었다. 이혼하셨음에도 전처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해주셨고, 아들이 태권도를 배웠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분은 내가 가진 편견을 하나 깨줬다.
"미국식 발음에 갇혀있지 마세요. 편하게 발음해도 다 알아듣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p와 f 발음을 더 잘 구분한다며 칭찬도 해주셨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가볍게 만들어줬는지 모른다.
그래머 선생님은 더 한국과 가까운 분이었다. 아내분이 한국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따님은 이화여고에 다닌다고 하셨다. 시험을 볼 때마다 나와 일본인 여성분만 거의 다 맞혔고, 선생님은 그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칭찬해주셨다. 교재는 뉴질랜드 실제 생활을 담은 내용이라, 나중에 일상에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그 강좌에서 만난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
2018년, 월드컵이 한창이었다. 반에는 브라질 친구와 아르헨티나 친구가 함께 있었다. 그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 축구 진짜 잘하더라."
서로 나라의 축구 이야기를 나눴다. 웃고 떠들다 보면 수업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본 아프가니스탄 친구도 있었다. 서른 살은 돼 보이는 듬직한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열여덟 살이었다. 그 나이에 혼자 뉴질랜드까지 온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면 나라별 맛집 공유가 이어졌다. 아일랜드 출신 선생님은 최고의 아이리시 펍과, 기네스보다 유명하다는 머피 흑맥주를 소개해줬다. 일본인 여성분은 오클랜드 최고의 스시집을 알려줬다. 나는 감자탕 맛집을 소개했다.
다들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줬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하늘이었다. 이어폰에서는 길구봉구의 이별이란이 흘렀다. 그 노래가 그 밤하늘을 더 멋지게 만들어줬다.
지금도 가끔 그 노래를 들으면, 그날 밤 버스 정류장의 하늘이 떠오른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뉴질랜드 드라마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영어 공부를 했다. 매일 루틴을 지키려 했다.
뉴질랜드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이것이다. 루틴은 한 번 형성되면 강하다. 그런데 거기에 불을 붙이려면, 즐거움이 필요하다. 의무로 하는 30분과 즐거워서 하는 30분은 지속력이 다르다.
브라질 친구의 웃음, 선생님의 칭찬,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 그것들이 내 루틴의 불쏘시개였다.
즐겁고 흥미로운 것과 연결된 루틴은, 오래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