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 길. 차량 안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어떤 이는 졸고, 어떤 이는 뉴스를 보고, 어떤 이는 게임을 한다. 그리고 나처럼 주식 앱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
항상 이 시간에 들여다보는 앱이 있다. 바로 '주식 어플'. 나는 이곳에서 나의 주식이 얼마나 오르고 빠지는지 매일 지하철을 타고 갈 때마다 확인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직장인들이 똑같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때로는 미간을 찌푸리고, 때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들. 우리는 모두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지하철이 한 정거장씩 지나갈 때마다 나의 손가락은 빨라진다. 마치 그 몇 분 사이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듯이. 하지만 현실은 늘 냉정하다. 파란색 숫자들이 나의 하루 컨디션을 좌우하고, 빨간색 숫자를 보면 괜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NXT라 불리는 넥스트트레이드라는 대체 거래소가 등장한 것이다. 기존 한국거래소(KRX)의 독점 체제에 균열을 가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곳 거래소를 통해 우리는 한국거래소에서 제공했던 정규 시간(오전 9시~오후 3시 30분) 외에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꽤 흥미로웠다. 미국처럼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 거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니까. 직장인들에게는 특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느라 정규 장 시간에 거래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거래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많은 변수가 생기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넥스트트레이드가 생기고 나서 내 일상은 조금 더 복잡해졌다. 예전에는 장이 열리기 전 8시 30분쯤 한 번, 점심시간에 한 번, 장 마감 후 한 번 정도 확인했다면, 이제는 이른 아침부터 퇴근 후 집에서까지 수시로 확인하게 되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주식을 확인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이다.
그치만... 주식 거래 시간만 늘어나면 뭐하나. 정작 내가 산 주식은 오르지 않는데. 오히려 거래 시간이 늘어나면서 손실을 볼 기회만 더 많아진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확인한 수익이 저녁에는 손실로 바뀌어 있는 날이 부지기수다.
오늘 9월 16일 기준 국내 코스피 지수가 3,450을 넘겼다. 사상 최초란다. 뉴스에서는 연일 "코스피 신기록 달성"이라는 헤드라인이 쏟아진다. 증권가에서는 축제 분위기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자 내세웠던 주가 부양 정책이 외국인들에게 국내 주식 시장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나 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드디어 한국 주식시장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K-Economy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등등. SNS에는 수익 인증샷들이 넘쳐난다. "오늘 하루 수익만 500만 원", "드디어 내 계좌도 천만 원 돌파", "이래서 주식하는 거지"같은 글들이 타임라인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이럴 때면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더 우울해진다. 남들은 다 성공하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 시장이 상승장인데도 내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냥 놔둘걸 하는 마음만 지배적일 뿐. 왜 그걸 팔았지? 아 그때 그냥 놔둘걸... 그냥 둘걸... 작년 말에 팔았던 SK하이닉스, 올해 초에 손절했던 한화솔루션, 몇 달 전에 정리했던 카카오... 지금 보면 모두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종목들이다.
반면 지금 들고 있는 종목들은 어떤가. 전문가들이 "유망하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던 종목들, 유튜브에서 "이 주식은 반드시 오른다"라고 했던 종목들... 시장이 이렇게 좋은데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거나 마이너스다.
그냥 뒀던 종목들은 죄다 오르고 내가 산 종목만 왜 마이너스지. 이런 생각들로 나의 뇌가 지배당해 버렸다. 시장은 축제 분위기인데 나만 소외된 기분이랄까. 마치 모든 사람이 파티를 즐기는데 나만 문 밖에서 서성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익 인증"은 넘쳐나는데 손실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들 성공한 이야기만 하니까, 마치 실패하는 건 나뿐인 것 같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개인투자자 중 실제 수익을 내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는데, 왜 내 주변엔 성공한 사람들만 보이는 걸까.
그런 와중에 '부자의 그릇'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자청' 추천도서 목록에 있는 책이었는데,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릇'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자녀와 와이프를 둔 은행을 다니는 한 남자가 친구의 권유로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일을 '조커'라 칭하는 한 노인에게 털어놓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뭐 그리 어렵지 않은 책이었다. 술술 읽어 내려가면서 첫 눈에 보였던 건... 여기 나온 주인공이 딱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란 것이었다. 30대 후반의 가장, 3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고 아내가 있고 딸아이가 있는... 그리고 자기가 잃어버린 돈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그 외의 것들에게 무관심하고 본인 스스로를 매일매일 자책하는 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책의 시작 장면부터 심장이 뜨끔했다. 주인공이 수중에 800원밖에 없었는데 자판기 음료수가 900원이라 100원을 노인에게 빌릴까 말까 걱정하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이 가장은 일전에 사업을 통해 몇억이라는 자금을 굴렸던 사람인데 고작 100원 때문에 고민을 하는 모습이라니...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만나면 서슴지 않고 계산을 담당했던 내가, 지금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는 것도 망설이게 된다. 5,000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집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또 이걸 보고 내 모습 같아서 먹먹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니... 누가 내 상황을 듣고 책을 낸 건가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이게 바로 나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인사말에도 나온다.
"나는 자네에 대해 유추했지. 분명히 돈의 지배를 받고 있을 거라고."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고, 돈 때문에 가정이나 사랑, 우정이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 돈을 얼마나 가졌는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여겨, 결국 돈보다 중요한 가치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되는 두려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로 나는 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주식 확인, 밤에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것도 주식 확인. 친구들과 만나도 결국 화제는 돈 이야기로 귀결되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머릿속으론 끊임없이 돈 계산을 하고 있다.
더 섬뜩한 건 내가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도 변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을 먼저 봤다면,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저 사람은 돈을 얼마나 벌까", "어떤 차를 타지", "어느 동네에 살까" 같은 생각들이 먼저 든다. 나도 모르게 돈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러한 자책을 계속하게 되는지 잠깐 생각해 보았는데, 당장 수중에 여유자금을 굴릴만한 돈이 없다는 데 있었다. 투자할 여유자금이 있다면 손실이 나더라도 '기다려보자'는 여유가 생기는데, 당장 생활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는 매일매일이 조바심이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사람들과 생활비로 투자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는 잃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으니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후자는 매일매일이 생존의 문제다. 주식이 떨어지면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고, 오르면 언제 팔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이 책을 쭉 따라가다 보면 조커가 주인공에게 해준 말이 있다.
"사람들은 회사가 문을 닫거나 개인이 파산하는 원인이 '빚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중에 '돈이 없어지기 때문'이야."
이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빚이 있어도 현금흐름만 원활하면 버틸 수 있지만, 당장 쓸 돈이 없으면 아무리 자산이 많아도 무너진다는 뜻이다. 나 역시 종이상으로는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이 있지만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 없으니 늘 불안하다.
당장 200만 원이 없어 다음 달 생활비를 고민하는 나에게 어쩜 이렇게 딱 맞는 말인지... 당장 가용할 돈이 없어 누군가에게 빌리거나 새로운 신용대출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나를 더욱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재테크 유튜브에서는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아서라도"라고 하지만, 그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그런 여유부릴 조차 사치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와 공간이 없으니 얼굴은 어두워져 가고 가족들에겐 환한 미소로 대화할 여유조차 생기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이야기해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아내가 건네는 따뜻한 말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돈 걱정이 나의 모든 것을 잠식해 버린 것 같았다. 예전에는 즐겁게 봤던 영화나 드라마도 집중이 안 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꾸 피하게 된다.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간다. 이렇게 나의 마음 때문에 나의 생활이 점점 더 궁지로 몰리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선 당장의 타개책은 알려주지 않았다. 마법 같은 해결책도, 단숨에 부자가 되는 비법도 없었다. 현실적인 조언이나 구체적인 투자 방법론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답답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노인의 도움으로 딸의 병원비를 해결하고 노인이 마련해 준 일자리에서 일하게 되는 걸로 책은 마무리된다. 어찌 보면 너무 현실적이고 평범한 결말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없다.
하지만 이 가장은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자책하는 모습 말고 당장 일을 함으로써, 그리고 가족을 돌봄으로써 다시금 사회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조커가 주인공에게 한 말이었다. "자네가 잃어버린 돈은 이미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네. 그 돈을 되찾으려 애쓰는 것보다, 지금부터 새로 만들어낼 돈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맞는 말이다. 이미 잃어버린 돈을 후회하며 보내는 시간과 에너지를, 앞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책 속 주인공이 노인에게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잃어버린 돈에 매몰되어 현재를 놓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주인공이 딸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묘사였다. 돈 걱정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딸의 밝은 미소, 아내의 따뜻한 배려, 이런 것들이 사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책에서도 주인공은 결국 일자리를 구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중요한 건 돈 문제를 해결하되, 그것에 완전히 지배당하지는 않는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어떤 걸 해야 하는 걸까?
인간이 돈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 중 90%는 잘못된 타이밍과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각각의 사람마다 성공과 실패가 다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덮고 며칠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선 아침 지하철에서의 루틴을 바꿔보기로 했다. 매일 주식 앱만 들여다보던 시간에, 일주일에 2-3번은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어보기로 했다. 당장 수익률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달라질 것 같았다.
두 번째는 가족과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늘려보는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만큼은 핸드폰을 멀리 두고, 아이의 학교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기로 했다. 아내와도 돈 이야기가 아닌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예전의 따뜻함이 되돌아오는 것 같다.
세 번째는 현실적인 부분이다. 당장의 현금 흐름 개선을 위해 작은 부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거창한 사업은 아니더라도,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나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보고 있다. 월 50만 원이라도 추가 수입이 생긴다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길 것 같다.
네 번째는 투자 방식의 변화다. 그동안 단기 수익을 노리며 자주 매매를 반복했다면, 이제는 정말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보려 한다. 매일 주식 앱을 확인하는 대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보기로 했다. 쉽지 않지만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마음가짐의 변화다. 잃어버린 돈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 경험에서 배운 교훈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왜 그때 그 선택을 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후회는 과거를 붙잡지만, 교훈은 미래를 만든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구절이 있다. "부자의 그릇이란 돈을 많이 담는 그릇이 아니라, 돈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그릇이다." 당장 통장 잔고는 바뀌지 않을지라도,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만큼은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주식 앱을 켤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숫자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뭘까'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게 책 속 노인이 말한 진짜 부자가 되는 첫걸음일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나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하철에서 똑같이 주식 앱을 보는 사람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이야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고민 자체가 부끄러운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고민에 매몰되지 않고, 작은 변화라도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부자의 그릇'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