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불어온 연애 바람
대학교 졸업 후 일상이 공부 하나로 단조로워지고, 일단 먹고살 걱정만 해서였는지 연애도, 결혼도 뭐 굳이...라고 생각했다. 내 돈 벌어 나(+부모님)만 챙기면 편안한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전에 연애도 거의 안 해봤고, 대학 때는 그냥 짝사랑 비슷하게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남이 나를 좋아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영 소질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본능인 것인지 학습화된 사회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결혼을 못 할 것 같았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안 하는 데 무슨. 내 두려움은 지금은 연애도 결혼도 필요 없지만 만약 5년 뒤, 10년 뒤에 하고 싶어지면 어쩌냐 하는 문제였다. 그때 가서 누구를 찾고 만나려면 당시 내 생각으론 분명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힘들 것 같다였다.
갑자기 이렇게 나는 이대론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연애고 뭐고 일단 사람을 많이 만나는 곳에 가야겠단 생각이었고, 공부하고 취직하며 내려놓았던 내 취미생활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결국 일주일에 독서토론 모임 2개, 영화 모임 1개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지방에서 자취는 나의 연애 및 나아가 결혼의 방해물로 여겨져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정말 이 이유....가 90%였다. 쓰면서도 믿기지가 않는구만. 나 자신. 매력 있고, 자신 있고, 여러 가지 수단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들은 어디서든 잘 만나리라 생각한다! 그냥 나는 그때 모임이 주로 서울에 많았고, 차도 없었고, 그냥 본가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온 마음이 쏠려서일까 나가던 영화 모임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레 독서 모임은 점점 안나가게 되었다.) 그 사람이 주최한 첫 모임(이대에서 '그녀에게'를 봤다)이 즐거웠고, 너무너무 대화가 잘 이어져 밤새카톡으로 연락을 했고, 다음 날 친구랑 약속이 있었음에도 그 약속 시간 뒤에 만나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었다. 이 사람의 근무지는 종로였고, 내가 매일 서울역으로 퇴근을 하면 7시 남짓 되니까 서울역, 명동, 종로 근처에서 매일 만나서 저녁 먹고 둘 다 좋아하는 알라딘 서점에 가서 책도 고르고 영화도 고르는 일상이었다.
일 끝나고 멀리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됐고, 심지어 집 방향도 비슷해서 내가 먼 거리를 오가지만 정말 정말 힘내서 만나고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집에 돌아가서 쉬기 바빴지만 그렇게 저녁에 남자친구를 만나서 걷고 밥 먹는 시간이 내게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일이 되어 계속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당시 정말 미쳐가지고 거의 매일 만났었는데 아침에 새벽같이 나가서 풀근무 후 기차 타고 올라와서(올라오는 기차에서 평소에 안 하던 화장도 하고 진짜 스스로가 너무 진상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트를 가고... 집에 9~10시쯤 가서 씻고 자고, 바로 자면 다행인데 뭐 할 일이 있거나 쓸데없이 안 자고 놀면 정말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상이었다.
초창기에 자주 만나지 못할 상황이 생겨서(갑자기 내가 페루로 출장을 가야 했고, 나 혼자 영국 여행을 가려했고) 이 만남이 계속될 수 있을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이지 오글거리지만 사랑의 힘으로 극복을 했고, 3년을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정말 지긋지긋한 장거리 통근은 결혼 후 우리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