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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Oct 18. 2024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

의.식.주+일

결혼을 하고 나는 창신동으로 이사를 갔다.


서울역과 더 가까워졌을뿐 아니라 마을버스를 타면 동묘앞역으로 바로 가서 1호선을 타고 서울역까지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그 전에는 1호선으로 갈아타야했다).


한 단계가 줄었고, 거리도 줄었으니 내 출퇴근은 더 나아졌어야 하는데 어쩐지 그렇지 못했다.


절대적 시간이 덜 걸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퇴근 후 일상이 무척 고되었다. 퇴근 동묘앞역에서 타는 마을버스엔 사람이 무지 많아서 힘들었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6호선으로 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창신역에 내려 집에 땐 정말 엄청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했다. 


우리 아파트는 낙산공원이 바로 근처여서 정말 좋기도 했다. 주말엔 낙산공원 산책하고, 혜화로 내려가 대학로가서 놀고,  종로에 가서 서점가고, 창경궁도 가고, 한성대쪽으로 내려가서 성북동 주변도 걸어다니고, 내가 좋아하는 곳들을 다니기에 정말 좋은 위치였다. 산을 타야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산이라는 것이 그렇듯 정상은 하나지만 오르고 내리는 길은 다양한데 빠를 수록 수직이며 평탄할수록 오래 걸린다는 불변의 이치가 있으므로 나는 이제 다시는 언덕배기에 안 살거라고 다짐했다. 


이렇게 언덕의 괴로움 하나가 있었고, 두 번째는 이제 나를 돌봐주고, 밥도 챙겨주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한 상황이지만 실감하지 못하고 결혼하는 나 같은 철딱서니도 많지 않을까?


자취를 하면서 사람 구실하며 사는 것이 이렇게나 허드렛일이 많고 반복되는 일이 많구나 느꼈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살아가야하니 혼자 사는 것보다는 예의를 갖춰가며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늦게 집에와서 저녁을 해 먹으려니 일이고, 늘상 시켜먹을 수도 없고, 신혼 초반은 그래도 뭘 해먹고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지만 그것도 계속되진 않는 법. 청소와 빨래 등등도 더 잘 챙겨서 해야했고. 해야했다기 보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누가 안 그럴까? 집을 예쁘게 꾸미고, 서로의 취향을 반영해 놓고, 잘 가꾸는 아름다운 일상!을 꿈꿨지.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듯이 서로 다른 출퇴근 시간을 맞춰가며 생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둘 다 일하는 와중에 집안일은 누가 더 많이 하는가, 당신은 왜 그렇게 하는가 혹은 하지 않는가 등으로 날을 세우기도 하는 날도 있고. 


회사를 다닌지 4~5년차쯤 되었으니 일도 무르익어 바빴고, 업무 특성상 컨퍼런스 콜이 많아서 밤에 야근하는 일도 많았고, 일년에 2번은 일주일 이상 해외 출장도 있었다.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던 혼자만의 일상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 둘이 함께 자전거 바퀴 하나씩 맡고 굴려야하는 일상이 되었으니 쉬울리 만무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일상은 많이 퇴색되고, 반짝이는 신혼부부 생활만 남은 듯하다. 저녁에 같이 밥해먹고(시켜먹고), 우리 둘이 좋아하는 영화를 잔뜩보고, 밤에는 산책겸 걸어서 이마트에 시덥잖은 것들을 사오고, 주말에는 동묘시장에 가서 보물이 있나 찾아내고, 좋아하는 DVD를 사러 알라딘에 가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했던 시절이었네.


장거리 통근을 돌아보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이렇게 소소한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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