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여름 Oct 08. 2024

독립생활

짧게 끝난 자취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나는 출근하고 3개월쯤 되었을 때 자취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먼 거리 통근하는 딸이 힘들겠단 생각을 하시면서도 타지에 혼자 사는 것을 걱정하셨는지 반대를 하셨다. 돈도 없는 주제에 나가 산다고 하니 더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이제 돈을 벌기 시작해서 모아둔 돈도 없었고, 혼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대출받아서 갚으면서 살면 되지 뭐가 문제야 이런 마음이었다.


결국 나는 우겨서 원룸을 구했고, 보증금은 대출받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해주셨다. 그리 큰돈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나에게 그 돈이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확 들었었다.


주방이 조그맣게 있고 문으로 방과 분리된 형태였고, 베란다도 있고, 하나뿐인 방이었지만 꽤 넓어서 한편으로는 휑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내가 여기 오래 살겠어라는 마음으로 집에서 가져온 식탁을 책상 겸 식탁 겸 사용했고, 침대 없이 그냥 접이식 매트(완전한 침대 매트도 아니었고..)를 깔고 지냈다. 


독립을 하니 정말 정말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돌았다! 특히 퇴근 후에 남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남는 시간에는 스터디를 하고,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기도 하고(절친한 동료와 맥주도 자주 마셨다), 책도 보고, 특히 유튜브 브이로그를 많이 봤다.


약 10년 전쯤... 유튜브로 노래는 많이 들었지만 브이로그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는데,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외국 브이로그를 정말 많이 봤었다. 그때 그냥 브이로그를 찍었다면...? 아마 그러진 않았을 것 같고. 결국 뭔가 생산적으로 살 것 같았지만 딱히 그러지도 않았단 이야기.


서울/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차가 없다 보니 내 운신의 폭은 확 줄어들었고, 평일에 시간이 아무리 남아도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스무 살에 딴 장롱면허를 되살릴 용기도 안 났다. 밤에는 사람도 많이 안 다니고, 그리고 나가면 주변 사람들이 다 직장 동료로 보여 나가는 것이 더 꺼려지기도 했다. 


혼자 서점에 가고 혼자 밥 먹기도 좋아하지만 어쩐지 직장 근처에서는 그럴 맘이 들지 않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운전연수도 받아서 중고차를 사던 공유차량을 이용하던 운전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운동을 정말 싫어했고 필요를 못 느꼈었는데, 이 당시에 운동을 하면서 건강에 좀 더 신경 썼다면 더 좋은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 


당시 이렇게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동기들도 많았고, 나처럼 자취를 하는 경우도 많아 동기들과 종종 만나기도 했지만 뭔가 일상이 점점 무료해지고, 불편해지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불안해지는 마음까지 들었다. 


자취를 해 보면 한 인간으로서 생활을 꾸려나간다는 게 무엇인지 정말 쉽게 알게 된다. 요리, 청소(주방, 화장실, 방, 쓰레기 처리 등등), 빨래, 기상과 취침 같은 기본적인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은 참으로 품이 드는 일이다.


자취는 생각보다 돈도 많이 든다. 당연히 전세든 월세에 드는 비용, 관리비(종류도 다양!), 식비, 생필품비(세제가 집에서 자라난다고 생각한 사람...), 본가로 오가는 비용까지 하면 몸은 편해졌으나 주머니 사정은 편해지지 않았단 사실. 


이 독립생활은 나의 갑작스러운 연애 이슈로 1년 남짓한 기간을 보내고 끝이 나게 되었다. 




                    

이전 04화 기차 출퇴근의 애로사항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