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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an 28. 2019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은 최초의 기관차  


파나마는 운하가 생기기 이전에도 이미 교통의 요충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지협에 속했기 때문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기가 수월하단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같은 파나마의 특징을 파악하고 파나마에 진출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철도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철도 연결을 선점하는 것이 미래에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철도 개통을 실현 시키기 위해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파나마는 독립국이 아닌 콜롬비아에 속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46년 맺어진 비드랙-멀라리노 (Bidlack-Mallarino) 조약을 통해 미국은 철도 건설을 허락받았고, 1850년부터 철도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파나마 국기와 파나마 시티 (wikipedia)


하지만 파나마 정글의 높은 기온, 말라리아 같은 질병은 철도 건설에 큰 걸림돌이 됐습니다. 미국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과 자금이 필요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된 환경에서 일하기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원래 계획을 밀어붙여 철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결국 5년이란 시간이 걸려 총 74.5km에 이르는 철도를 완성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는 기차는 1855년 1월 28일 개통됐습니다. 이 날 기차는 차그레스와 파나마 시티 사이를 여행했고, 왕복 1인당 가격은 50페소로 당시로서는 매우 비싼편에 속했습니다. 예상대로 미국은 철도를 운영하며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고, 철도는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전까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주요 교통 수단 역할을 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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