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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Feb 08. 2019

원수였던 칠레와 볼리비아, 서로 화해하다?


역사적으로 볼리비아는 칠레와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태평양 전쟁으로 볼리비아가 해안 지역 영토를 빼앗기게 되면서 양국간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는데요. 페루와 칠레 사이에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볼리비아도 칠레와 국경선 문제로 많은 다툼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볼리비아와 칠레와의 영토 문제가 본격화된건 1960년대부터 였습니다. 볼리비아는 영토 반환 요구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며 칠레가 자신들의 해안 지역 영토를 돌려줘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묵묵부답이던 칠레는 결국 1975년 2월 7일 피노체트가 직접 볼리비아 반제르 (Banzer)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짓게 됩니다.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두 정상이 만난 곳은 차라냐 (Charaña) 기차역으로, 양국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던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이른바 '차라냐 협정'에서 피노체트는 북쪽 지역에 조그마한 땅을 양보해 볼리비아가 해안지역으로 접근성을 허용하는 제안을 했는데요. 이를 통해 볼리비아와의 오랜 영토 분쟁을 끝내고, 동시에 자신이 일으켰던 쿠데타로 좋지않던 국제 여론의 시선을 잠재우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한 가지 문제, 혹은 속임수가 있었습니다. 칠레가 볼리비아에게 돌려주기로 한 영토 일부분이 페루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칠레 마음대로 페루 영토를 돌려줄 수 없었기에 페루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페루 정부는 볼리비아에 자신의 땅을 돌려주자는 칠레의 일방적인 결정을 거절했습니다. 대신 페루는 세 나라 모두가 만나는 아리카 지역을 공동 관리 구역으로 정할 것, 혹은 칠레 영토만 볼리비아에게 내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칠레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결국 두 나라간의 영토 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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