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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Feb 11. 2019

스페인과 영국이 맞붙은 카르타헤나스 전투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에 위치한 주요 항구도시입니다. 도시에 있는 오래된 항구와 요새들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요. 16세기부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프랑스, 영국,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적들의 셀 수 없이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1586년 2월 9일, 카르타헤나스는 영국이 이끄는 함대에 공격을 받게 됩니다. 2월 11일까지 총 3일간 벌어진 이 전투를 이끈 영국의 수장은 프란시스 드레이크 (Francis Drake)로, 원래 해적으로 금은보화를 실은 스페인 배들을 약탈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해적 출신이었음에도 공을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훈장을 받게된 그는 이번엔 아메리카 원정을 떠나 스페인 식민지를 약탈하라는 명령을 받게 됐고, 주요 도시였던 카르타헤나를 공격해 그곳에 있던 많은 재물들을 차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프란시스 드레이크 (사진 출처: Encyclopedia Britannica)


당시 페드로 데 부스토가 지키고 있던 카르타헤나는 각종 대포로 무장한 요새들이 많아 공격이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전부터 워낙에 많은 침략이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도 견고한 요새를 쌓아 침략에 미리 대비를 했던 겁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드레이크는 일부러 군대가 밀집한 곳을 피해 약한 곳부터 차례대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카르타헤나 상륙에 성공하며 스페인 군을 무찌르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드레이크는 카르타헤나에 머물며 한가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미 재물과 금전적 이득을 얻은 그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카르타헤나에 계속 머물며 영국의 영향력을 넓힐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하들과의 논의 끝에 식민지를 유지하는데 드는 금전적 부담감과 주변 지역에서 돌던 열병을 이유로 두 달만에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결국 카르타헤나는 다시 이전처럼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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