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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Feb 24. 2019

남미 포퓰리즘의 상징, 후안 페론


1946년 2월 24일, 아르헨티나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열렸습니다. 이 선거에는 후안 페론과 호세 탐보리니가 각각 후보로 나서 대통령 자리를 두고 맞붙었습니다.   


당시 페론의 지지자들은 노동자 계급과 서민층이었습니다. 페론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기존 엘리트 정치에 반감을 갖고 있단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복지 개선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반면 탐보리니는 기존의 정치 엘리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이루어진 민주연합당의 후보자로, 사실상 뚜렷한 정체성이 없이 페론에 반대하는 연합의 대표였습니다. 


페론과 탐보리니가 맞붙은 1946년 선거는 결국 후안 페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총 53퍼센트의 표를 얻은 페론은 약 8퍼센트 차이로 탐보리니를 따돌리고 새로운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20세기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의 아이콘으로 활약했던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이었습니다.   


임기를 시작한 페론은 선거 공약 대로 복지 제도를 개선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세우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등의 여러 복지 정책으로 서민층들의 삶을 개선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른바 페론주의 (좌파 우파 개념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페론의 정책을 지지했던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현상)가 큰 지지를 받으며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페론주의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정치 이념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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