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는데만 8시간

by 라티너리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로:


2018년 5월.


중남미 최대 주말 시장이라 불리는 에콰도르의 오타발로 시장을 구경한 뒤, 북쪽 국경에 위치한 도시 툴칸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툴칸으로 다음 목적지를 정한 이유는, 에콰도르 여행을 마무리하고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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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툴칸까지 가는 길 밖 풍경은 평화로웠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록색 언덕. 그리고 그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 들. 고산 지대인 안데스 산맥이었기에 식물들이 거의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산의 모습을 생각한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풍경이었다. 버스 창가를 통해 이 장면을 보는 순간만큼은 쌓였던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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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툴칸에 다다르자, 평온했던 마음은 다시 걱정으로 채워졌다.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긴장감을 가져온다. '외국인인 나에게 혹시나 무슨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라는 괜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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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툴칸에서 콜롬비아로 넘어가는 일정은 더욱 긴장이 됐다. 국경에 도착하기 며칠 전,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국경 지대에서 기자 3명이 마약 조직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FARC이라 불리는 콜롬비아 마약 조직원들은 에콰도르에 근거지를 두기 시작했고, 이후 에콰도르 정부를 위협하기 위해 계속된 테러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탓에, 국경을 넘는 일이 더욱 긴장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툴칸에 도착했을 때의 분위기는 테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가로운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나에게 "걱정하지 마, 여기는 안전해"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들 말에 의하면, FARC 게릴라 조직이 활동하는 곳은 에스메랄다 주라 불리우는 서부 해안가 쪽으로, 툴칸과 콜롬비아를 잇는 지역까지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불안감은 점차 사라졌고, 아무 문제없이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들뜬 마음으로 이민 사무소 앞에 다다랐을 때,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끝없이 이어져있는 "대기줄"을 봤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 때문에 당황스러워 주위 사람들에게 예상 대기시간을 물어보자, 그들의 대답은


"글쎄, 아마 못해도 10시간 정도?"


"......"


10시간?


고작 몇 미터 안 하는 국경을 넘는데 10시간이라니...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날 에콰도르의 국경을 넘는데 총 9 시간을 거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베네수엘라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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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의 국경을 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한 시간 안에 모든 출입국 절차가 끝나기 마련이다. 절차도 간단하다. 에콰도르 측에서 출국 도장을 받은 뒤, 다리를 건너 콜롬비아 입국소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입국 도장을 받으면,


"Bienvenido a Colombia!" (콜롬비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환영인사와 함께 최대 90일 체류 허가 도장을 받게 된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 빠른 시간 내에 국경을 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바로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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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따르면 하루에 수 천명이나 되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자신의 조국을 탈출한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불안정한 경제와 정치 상황이 그들을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로 떠나게끔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미 국가들 대부분의 국경 지역은 베네수엘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국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사람들은 지도를 보며 단순히 A에서 B로 이동하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단순히 지도에서만 가능한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 속 여행에선, A에서 B로 가는 길에 온갖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곳을 잠시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자일지라도, 현실의 일부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내가 마주하게 된 여행의 변수는 베네수엘라였다. 나는 단지 뉴스에서만 접했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과 함께 대기줄에 서야 했고, 그렇게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을 보내며 하염없이 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엔 이러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화가 났다. 그런데 화를 낸다고 무엇이 바뀌나, 나만 손해일뿐. 여행자라는 특정 신분을 내려놓고, 그곳 사람들처럼 현실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특히 워낙 예기치 못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남미여행은 더더욱 마음을 비워야 했다.


콜롬비아 도착:


그렇게 베네수엘라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 있다 보니 어느덧 입국 사무소에 다다랐다. 에콰도르에서 출국 도장을 받은 건 약 여섯 시간을 대기줄에서 기다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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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콜롬비아에 온 걸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쓰여있는 다리를 지나 콜롬비아 입국 심사소로 향했다. 가는 중간 허기진 배를 달래려 노점상으로 가 콜롬비아 대표 간식거리인 '따말레스'를 먹고, 또다시 기나긴 줄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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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 콜롬비아 입국 절차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콜롬비아 측에서는 베네수엘라 사람들과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아닌 외국인들의 입국 라인을 따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입국 사무소에 다다르자, 대기줄을 관리하던 경비원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초록색 여권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싱긋 웃으며


"넌 저기 (줄이 거의 없는 곳)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줄에서 약 한 시간 반을 기다린 결과,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콜롬비아 입국 도장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에콰도르에서 6시간이 넘게 걸려 받아냈던 도장을 콜롬비아 사무소에서는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받아낸 것이다.


그렇게 콜롬비아 국경 도시 이피알레스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툴칸을 떠난지 약 8시간 만의 일이었다. 나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서 바로 짐을 풀고, 따뜻한 물로 지친 몸을 풀었다. 콜롬비아에서는 그래도 2시간도 안 걸려 통과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다음날 이피알레스의 랜드마크 성당을 보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여행의 신기한 점을 꼽으라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 당시의 힘든 일은 생각나지 않는다 라는 점이다. 일년이 지난 지금, 국경을 건너며 기다렸던 아홉시간의 피로함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그곳에서 내가 만난 베네수엘라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들, 그들이 말해주던 베네수엘라 상황들은 그날의 피곤함보다 더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베네수엘라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다시 한번 나의 머릿속에 등장하곤 한다. 이처럼 콜롬비아 땅을 밟은 첫날은, 콜롬비아에 대한 인상보다 오히려 베네수엘라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국경이라 불리는 정치적 경계선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이민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콜롬비아 여행 중 가장 앞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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