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에서 마주한 절벽 앞 성당

#첫 번째 콜롬비아 여행지, 이피알레스

by 라티너리


이피알레스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호스텔에서 차려준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이피알레스 중앙 거리로 나가보기로 했다. 숙소가 외곽지역에 있었지만 규모가 작은 도시인지라 큰 어려움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약 15분쯤 경사진 언덕길을 헥헥대며 올라간 뒤에서야 (저질 체력 때문인지, 도시가 해발 2,800m였기 때문에 그랬던 건진 모르겠지만) 이피알레스 도시의 중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7월 20일 광장


어느 남미 도시나 마찬가지로, 이피알레스 또한 플라자라는 곳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있었다. 스페인어로 '광장'을 뜻하는 '플라자'는 사각형 모양으로 생긴 광장을 뜻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도시를 계획할 때 플라자를 만들고 그 주변에 관할청과 교회를 만드는 형식을 따른다. 이피알레스도 스페인 식민지 영향을 받아 7월 20일 (Parque 20 de Julio)이라 불리는 넓은 광장과 붉은 벽돌 모양의 다소 독특한 양식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참고로 7월 20일은 콜롬비아의 독립 기념일이다.)


이피알레스 거리


에콰도르에서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에 도착했지만, 나라가 바뀌었다고 해서 큰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간다는 일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는, 다른 문화권의 나라로 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스페인어를 쓰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남미 국가의 특성상, 에콰도르에서 접했던 일상의 모습과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달라진 건 슈퍼에서 쓰는 돈이 콜롬비아 페소로 바뀌었다는 점과 거리의 명칭이었다. 에콰도르가 사람의 이름이나 지역 명칭으로 이름을 지었다면, 콜롬비아는 단순하게 숫자로 (예를 들면 calle 4, Carrera 7) 거리의 이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약 한 시간 동안 도시 길목 이곳저곳을 돌아본 뒤, 이피알레스에서 가장 유명한 라스 라하스 성당으로 향했다. 사실 조그마한 도시인 이피알레스에서 머문 이유도 이 성당을 보기 위함이었다. 가파른 산과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한 라스 라하스 성당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저기에 교회가 생겼을까?"라는 생각을 자아냈다.


이피알레스를 대표하는 라스 라하스 성당은 도심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음 같아선 돈을 아끼기 위해 걸어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워낙 거리가 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성당으로 가는 값싼 로컬 버스가 있다는 인터넷 정보는 얻었지만, 정확한 버스를 찾지 못해 결국 콜렉티보를 타고 이동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여기서 콜렉티보는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택시의 형태로, 사람 4명이 다 차야만 출발하는 독특한 방식의 운송수단이었다. 4명이 금방 모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하필 그날이 일요일이었기에 괜한 걱정이었다. 5분도 안되어 성당으로 향하는 사람이 모였고, 콜렉티보는 곧바로 라스 라하스 성당으로 출발했다.


라스 라하스 성당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도착한 라스 라하스 성당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파른 산과 폭포가 흐르는 자연을 끼고 절벽에 위치한 성당과 높이 50미터가 넘는 아치형 다리의 모습은 중세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남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이 아닌 고딕 양식을 한 성당의 모습은 라스 라하스 성당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성당이 가파른 절벽 가장자리에 세워진 이유는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려온 전설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1754년, 마리아는 청각 장애를 앓던 자신의 딸 로사와 함께 절벽과 절벽 사이에 있던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로사가 지금의 성당이 위치한 쪽을 가리키며, "엄마! 성모 마리아께서 저희를 지켜보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마리아 또한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보았지만, 우연의 일치로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몇 주가 흐른 뒤, 성모 마리아를 목격했던 딸 로사가 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깊은 슬픔에 잠긴 마리아는 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보았던 장소로 돌아가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며칠 뒤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신의 딸이 다시 마리아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 기적과 같은 사건은 이피알레스 지역의 유명한 전설로 남게 되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절벽에 조그마한 사원을 세웠다. 이 사원은 1916년이 되어 고딕 양식을 한 성당으로 기획되었으며,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현재의 웅장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성당답게, 건물을 꾸미고 있는 스테인 글라스와 동상들은 대부분 그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성당 가장자리 한 곳에는 마리아와 그의 딸 로사의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절벽 위에 아찔한 모습을 한 라스 로하스 성당은 현재 이피알레스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있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관광지지만, 이피알레스 지역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는 마음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실제로 성당 앞에 있는 놓여 있는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조그마한 동굴 속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수많은 촛불을 볼 수 있다. 현실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기대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남기고 간 흔적들이다. 동굴 속에 놓여진 촛불들은, 마치 어둠을 밝혀주는 작은 희망의 빛처럼 잔잔히 타오르고 있었다.


20여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중남미 대륙에서도, 콜롬비아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기로 손에 꼽힌다. 절벽 끝자락에 위치한 라스 라하스 성당의 모습은 그런 콜롬비아 사람들의 신앙심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험한 지형일지라도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성모 마리아를 위해 성당을 지은 이피알레스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남미 지역에서 마주한 수 많은 성당에 얽힌 이야기보다 더욱 오랜 시간동안 기억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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