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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r 22. 2022

귀족 신분 따위가 뭐가 중요한데?


16세기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뒤, 중남미 사회는 철저한 계급 사회로 나뉘었습니다.


식민지 시절 중남미엔 크게 다섯 개의 계급이 존재했는데, 가장 꼭대기에는 스페인에서 파견된 관료를 뜻하는 페닌술라레스 (Peninsulares),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백인 크리오요 (Criollo), 혼혈인 메스티소와 물라토, 주로 카리브 지역에 노예 신분으로 거주했던 흑인, 그리고 원주민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출신, 혈통, 인종에 따라 계급을 엄격하게 나눠 식민지를 통치했는데 사실상 스페인 ‘순수 혈통’이 가장 많은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카스트 제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같은 계급 사회는 칠레 식민지 사회에도 존재했습니다. 칠레는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던 곳으로 여겨지며 페루나 멕시코와 다르게 주변부 취급을 받았지만  회 구조는 다른 지역의 계급 제도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8세기까지 칠레에는 약 50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30만 명이 메스티소, 크레올 15만 명, 페닌술라레스 2만 명, 그리고 나머지는 인디언들과 흑인 들로 구성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위키피디아 커먼즈)


소수의 순수 혈통이 특권을 누리던 식민지 사회는 칠레가 독립하며 서서히 힘을 잃었습니다. 특히 칠레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베르나르도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는 유럽 계몽 철학을 바탕으로 왕이 다스리는 군주제 대신 시민 사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교회와 귀족 세력을 청산해야만 칠레에 제대로 된 민주 공화국이 세워질 수 있다고 믿었고, 1817년 3월 22일 귀족 신분 제도 폐지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나는 귀족 신분이 중세 시대의 초라한 전유물이라 생각하며, 칠레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후작, 백작, 남작과 같은 세습적인 귀족 호칭은 앞으로 폐지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단순한 시민으로 간주될 것이다.”


1817년 오이긴스가 남긴 기록 (사진 자료: 칠레 국립 기록보관소)


오이긴스가 추진한 사회 개혁은 300년 넘게 이어진 식민지 사회구조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급진적인 개혁이었으므로 특권을 누리던 상류 계층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결국 지지 계층을 잃은 그는 1823년 칠레에서 추방당했고 이후 페루로 망명을 떠나 남은 생을 살게됩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오이긴스의 과오와 업적에 대한 해석이 나뉩니다. 하지만 공통된 의견은 그가 칠레 공화국이 세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현재 칠레에선 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과 공원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심지어 해군 함정, 남극 연구소, 축구 클럽까지 오이긴스로 이름 지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https://www.archivonacional.gob.cl/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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