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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r 24. 2022

아르헨티나 군대는 왜 매번 정치에 개입했을까?


1976년 3월 24일, 아르헨티나 육군 총사령관 라파엘 비델라는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사벨 페론을 몰아냈고, 군사평의회 (Junta Militar)를 구성해 임시로 아르헨티나를 통치할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비델라는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를 ‘경제 위기를 종식시키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1976년 당시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이 450 퍼센트에 달했고, 도심 곳곳에서는 게릴라들이 활동하며 극심한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습니다. 비델라는 ‘국가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군대의 정치 개입은 피할 수 없었던 결정이었다’고 설명했고, 중산층과 보수파 지지에 힘입어 쿠데타를 정당화했습니다. 


하지만 1983년까지 이어진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은 많은 사람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더러운 전쟁’ (Dirty War)로 알려진 이 시기 동안 약 3만 명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죽거나 납치 당했는데, 희생자들은 주로 지식인, 노동자, 학생이었습니다. 비델라 정권의 인권 탄압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사회 질서 유지를 이유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군부 정권 기간 동안 벌어진 인권 탄압은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남았습니다.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던 3월 24일을 ‘진실과 정의를 기억하는 날’로 지정해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평화 행진에 참여하고, 자식들을 잃은 ‘5월 광장의 어머니 (Madres de Plaza de Mayo)’들도 아르헨티나의 중심 5월의 광장에 나타나 연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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