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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pr 30. 2022

벨리즈가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를 공용어로 쓰게된 이유


중미 국가 중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벨리즈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벨리세, 벨릭스로 불리던 벨리즈는 다른 중미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제국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는데요. 하지만 영국 해적들이 자주 출몰한 뒤엔 영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됐고, 스페인은 주권을 행사하는 한에서 제한적으로 영국인들의 정착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은 스페인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본격적으로 벨리즈에서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남미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생겼습니다. 스페인이 무너진 뒤 멕시코, 과테말라가 새로운 나라로 탄생했고, 반유럽 정서가 강해 영국이 벨리즈를 통치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교묘한 방법으로 벨리즈 통치를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1859년 4월 30일 과테말라와 맺은 앵글로-과테말라 조약 (Anglo-Guatemala Treaty)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과테말라는 중미 지역을 휩쓸던 미국 용병 윌리엄 워커에게 위협을 느꼈고,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수입하길 원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무기도 주고 과테말라-벨리즈를 잇는 도로도 건설해주겠다"고 말하며 솔깃한 거래를 제안했고, 대신 벨리즈 내 영국의 주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렇게 벨리즈는 ‘영국령 온두라스’란 이름을 갖게 됐고, 1981년 독립국이 될 때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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