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는 꽤나 복잡합니다. 과거부터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현재 외교 분야에서는 각자의 이익을 위한 셈법이 다 다릅니다. 또 쓰는 언어도 다르기 때문에, 정체성이나 문화 측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그에 비하면 중남미 나라들은 대체로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며 서로 동질감도 있고, 문화도 비슷합니다. 축구 경기 때 서로 죽일 듯하는 것만 빼면 서로 친한 이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쿠바와 멕시코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는 기본적으로 꽤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가장 큰 이유는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여행객들이 쿠바를 여행할 때, 멕시코를 통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교통편도 잘 발달돼있고, 두 나라의 경제나 문화적 교류도 꽤 활발하다.
멕시코가 쿠바와 가까웠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쿠바 혁명 때였다. 혁명 계획이 세워지는 동안, 멕시코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머물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이 중국에서 임시 정부를 세우고 도움을 받은 것처럼, 쿠바도 멕시코에게 지원을 받으며 혁명을 준비했던 것이었다.
멕시코는 쿠바에 카스트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졌을 때,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외교적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 눈치를 보며 관계를 끊었는데, 멕시코는 중립국 입장을 의리를 지켰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냉전 동안 멕시코는 사회주의에 민감했던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정치적 중립’ (Political Neutrality)을 유지하는 외교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관계가 딱 한번 나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2004년 멕시코의 폭스 대통령이 유엔에서 ‘쿠바의 혁명 정부가 인권을 탄압했다’라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때였습니다. 과거 조심스럽게 실행하던 외교적 줄타기에서 이번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쿠바 때리기'를 확실히 지지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과 가까워진 멕시코의 외교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과거부터 이어져온 멕시코 외교 정책의 위상과 영향력이 잿더미로 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NAFTA 체결 이후 미국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멕시코의 태도를 좋지 않게 본 것이었습니다.
카스트로의 강한 비판에 멕시코 정부는 즉각 “카스트로 발언에 유감”이라 밝혔습니다. 또 외국 정부가 멕시코의 외교 정책 결정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옳지 않다며 불편함을 나타냈습니다. 결정적으로 폭스 대통령은 2004년 5월 3일에 쿠바에 있는 멕시코 대사관을 철수하기로 결정하며 갈등에 더욱 불을 붙였습니다.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는 2012년이 돼서야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그해 쿠바를 방문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의 결심이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는 쿠바 아바나에서 라울 카스트로를 만났고 교역과 투자 정상화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후에도 쿠바 대통령이 멕시코를, 멕시코 대통령이 쿠바를 지속적으로 방문했고, 지금은 관계가 예전처럼 정상화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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