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독립 과정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몬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입니다. 시몬 볼리바르는 남미 대륙 북쪽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산 마르틴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남부 지역의 독립을 이끌었습니다. 두 명 모두 남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독립 영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의 독립 과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멕시코에선 미겔 이달고란 사람에 의해 독립이 시작됐는데요. (그의 정식 이름은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입니다.) 이달고는 1753년 5월 8일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후 학교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신부의 길을 걷게됩니다.
보통 독립 영웅들은 군인 출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미 지역의 두 영웅도 그랬고, 중미 독립을 이끈 프란시스코 모라잔 (Francisco Morazan)도 수많은 전쟁에 참여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달고의 경우는 조금 달랐는데, 그의 직업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투와 거리가 먼 신부였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보통 신부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철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유럽의 계몽사상을 받아들였고 교회의 보수적인 생각에 갇히기보다 개방적인 성향을 갖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외 관계도 허용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런 발언들 때문에 종교 재판을 두 번씩이나 받기도 했습니다.
신부였던 그가 독립을 외친 이유는 스페인 제국의 억압적인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 초 당시 스페인은 유럽에서 전쟁에 휘말려있었고 가능한 한 많은 금전적 지원을 중남미 식민지를 통해 메꾸려 했습니다. 이달고는 돈을 빌려 대농장 토지 (Hacienda)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스페인 당국이 요구했던 납부일을 지키지 못하며 땅 소유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평소 스페인이 멕시코 원주민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모습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달고는 이번 억울한 사건을 계기로 투쟁을 다짐하게 된 것이었다.
“너희 자신을 자유롭게 하길 원하는가? 300년 전 스페인 사람들이 빼앗은 조상들의 땅을 되찾길 원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즉시 행동해야 한다.”
이달고는 독립운동은 단순히 ‘스페인 타도’에만 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급진적 성향의 신부답게, 토지 재분배와 인종에 상관없는 평등을 외쳤습니다. 덕분에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짧은 시간 안에 수 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이미 나이가 55세가 넘으며 전쟁을 이끄는 건 무리였지만 그의 사상과 훌륭한 연설은 억압받던 멕시코 사람들의 마음을 한 데로 모으기 충분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달고의 투쟁은 군사적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금방 진압됐습니다. 그는 스페인 군에 의해 체포됐고 반역자로 낙인찍히며 처형당했다. 하지만 훗날 멕시코 사람들은 멕시코의 불공평한 현실을 바꾸자 했던 그를 진정한 독립 영웅으로 생각했고 그가 투쟁을 외친 1810년 9월 16일을 멕시코의 독립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