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넘치는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은 가끔 소름 끼치는 장면을 연출하곤 합니다. 2014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vs. 독일 결승전이 열렸을 때가 그랬습니다. 경기전 국가가 나오자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큰 소리로 따라 불렀고,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방방 뛰며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해당 영상) 손을 가슴에 올리고 경건하게 부르는 우리나라 애국가와 비교하면, 아르헨티나의 국가는 분위기가 사뭇 축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매년 5월 11일은 ‘아르헨티나 국가의 날’입니다. 스페인어로 국가를 Himno Nacional라 부르기 때문에, 이 날을 Día del Himno Nacional Argentino라 부릅니다. 오늘은 ‘아르헨티나 국가의 날’은 정확히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정부의 공식 자료를 살펴보면, 아르헨티나 국가는 '애국 행진곡'이란 이름으로 1813년에 제정됐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1810년 5월 혁명 이후 임시 정부를 세우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던 시기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제헌 의회 (Asamblea General Constituyente)는 나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몇몇 의회원들에게 가사 내용을 써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의원이자 작가이기도 했던 비센테 로페스 플라네스 (Vicente López y Planes)는 고민 끝에 아르헨티나 국가 안에 들어갈 가사를 완성시켰습니다. 여러 후보작들이 있었지만, 의원들은 로페스의 글을 만장일치로 선택했습니다. 당시 자유를 염원하던 아르헨티나의 염원이 잘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사 일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시민들이여 들어라, 신성한 외침을
"자유!, 자유!, 자유!"
쇠사슬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라.
고귀한 평등의 즉위를 보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민중이여, 만세!"
(...)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이후 이 가사는 블라스 파레라스 (Blas Pareras)가 작곡한 노래 위에 덧붙여졌습니다. 생각해보면, 한 나라의 국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그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작곡을 고민하던 어느 날, 파레라스는 우연히 극장에 가게 됐습니다. 그는 공연에서 듣게된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생각지도 못한 영감을 얻었고, 곧장 집으로 달려가 하룻밤만에 작곡을 끝냈다 합니다.
행진곡 느낌에 가까운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고, 1813년 5월 11일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국가로 선택됐습니다. 대신 당시엔 아르헨티나가 나라의 틀로 잡히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애국 행진곡” (marcha patriótica)으로 불리다가, 1840년이 돼서야 아르헨티나 국가 (Himno Nacional Argentino)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아르헨티나 국가의 첫 번째 버전은 무려 20분이 넘었다고 합니다. 너무 길었기 때문에 사실상 수정이 불가피했고, 스페인에 대해 적대적인 부분은 시간이 지나며 종종 생략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대 초가 돼서야 오리지널 버전의 맨 앞부분과 뒷부분, 그리고 코러스 부분만 부르기로 결정됐고, 공식 행사에서는 대부분 짧게 생략된 아르헨티나 국가가 쓰인다고 합니다.
*** 오늘부터 경어체 보다는 평어체로 쓰인 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경어체로 쓸수록 딱딱하고,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가 말투가 되는 거 같아… 조금 더 친근하게 와닿는 경어체로 매일 남미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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