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는 다양한 인종 문화가 혼합된 나라입니다. 인종 구성을 살펴보면 메스티소가 53%으로 절반이 넘고, 뒤이어 백인 30.7%, 아프리카계 10.5%, 원주민 3.4%를 차지합니다.
오랜 시간 내전을 겪으며, 콜롬비아는 지역마다 존재하는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국가 유산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인종 정체성과 커뮤니티가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10%가 넘는 아프리카-콜롬비아 문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70-80년대 콜롬비아 의회에선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을 대표하는 의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회 내에서 차별의 대상이었고, 교육이나 공공 보건 접근성도 떨어지며 빈곤층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을 바꾼 큰 전환점은 1993년에 일어났습니다. 콜롬비아 의회는 1993년에 흑인 공동체 법 (Law of Black Communities)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아프리카-콜롬비아 지역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한 커뮤니티를 설립하고,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콜롬비아 학생들의 교육 접근성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아프리카계 대표의 국회 2석을 보장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법을 콜롬비아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아프로-라틴 (Afro-Latin American) 커뮤니티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법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2011년 제정된 ‘아프로-콜롬비아의 날’ (Día de la Afrocolombianidad)은 1993년 법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콜롬비아 정부는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5월 21일을 ‘아프로-콜롬비아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 날은 콜롬비아 사회 내에 여전히 남아있던 인종 차별을 줄이고, 그들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한 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프로-콜롬비아의 날’이 5월 21일로 결정된 이유는 콜롬비아의 노예폐지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식민 시대 동안 콜롬비아는 노동 집약적 경제 구조를 가졌으므로,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콜롬비아 국립 기록 보관소 전 소장인 후안 프레시아도 (Juan Preciado)는 “110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이 카르타헤나 항을 통해 들어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세기 넘게 유행했던 콜롬비아 노예무역은, 1851년 5월 21일에 이르러 비로소 끝이나게 됩니다. 호세 힐라리오 로페즈 대통령은 이 날 콜롬비아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됐음을 공식 발표했고, 2011년 콜롬비아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아프로-콜롬비아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콜롬비아 사람들은 아직까지 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에 대한 사회 내 차별을 풍토병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차별이 워낙 오랜 시간 지속되다 보니 생긴 비유입니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은 경제적 수익이나 교육, 보건 혜택에 있어 여전히 차별받는 상황이라 합니다. 특히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이 유독 높았다고 합니다. 법이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조치가 생기며 인식이 개선되긴 했지만, 이전부터 이어져온 차별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선 많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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