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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03. 2022

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 이민자의 날’이 생긴 이유


아르헨티나에는 유달리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된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맥주를 뜻하는 스페인어 cerveza 대신 birra를 쓰고, 소년이란 뜻을 가진 chico 대신 pibe (이탈리아어 pivello에서 유래)를 씁니다. 아마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 보면, 스페인어지만 이탈리아 억양이 조금 섞인 느낌도 받게 되실 겁니다.   


미국이 이민 국가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나라라면, 남미의 아르헨티나도 한 때 유럽 이민자들을 많이 받았던 나라입니다. 왠지 언어도 같은걸 쓰는 스페인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왔을 거라 짐작할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로 가장 많이 온 이민자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합니다. 


연도 별 아르헨티나 인구수 (자료: Susana Torrado (2003) & Roberto Benecia, R. (2016))


위 자료를 살펴보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얼마나 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1870년대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 이민 행렬은, 1910년 중반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숫자는 항상 스페인보다 많았는데, 특히 초반에는 두 배 넘게 차이가 난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전체 아르헨티나 국민 중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1895년 자료를 보면, 3백만에 가까웠던 아르헨티나 인구수 중 이탈리아 이민자는 거의 50만 명에 달했습니다. 다시 말해, 6분의 1에 해당하는 아르헨티나 거주자들이 이탈리아 정체성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들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해 코르도바, 멘도사, 산타페 등 여러 도시에 정착해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아르헨티나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굳이 먼 아르헨티나까지 이민을 왔던 걸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탈리아 내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1861년에야 통일 국가가 된 이탈리아는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또 1910년대 초반에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삶이 더욱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황폐해진 조국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찾고 있었고, 마침 아메리카 대륙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좋은 곳임을 깨닫게 된 겁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탈리아 광장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두 번째 이유는 아르헨티나의 열린 이민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들이 있었고, 이 나라들 모두 그들의 이민 옵션에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를 선택한 건 아르헨티나의 개방적인 이민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1876년 아베야네다 (Avellaneda) 법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엔 이민자들이 땅을 소유하기 쉽게 만드는 일부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시킨 후 노동력이 필요했고, 유럽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땅을 개척시켜 나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몰렸던 보카 지구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워낙 많은 사람들이 건너왔기 때문에, 초반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들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다 20세기 초반이 돼서야 인구 조사 및 교육을 통해 이민자들을 '아르헨티나화 (argentinizar)' 시켰고, 그들이 아르헨티나 정체성을 갖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며 농업과 상업 같은 여러 경제 부문을 발전시켰습니다. 또 정치계에서도 많은 대통령이 이탈리아 가족 출신이었는데, 대표적으로 일리아, 페예그리니 대통령, 그리고 가장 최근에 대통령이 됐던 마크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이렇게 이탈리아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만큼, 매년 6월 3일을 ‘이탈리아 이민자의 날 (Día del Inmigrante Italiano)으로 정했습니다. 1995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법안 제24561안을 통과시키며 6월 3일로 날짜를 선택한 이유는 아르헨티나 독립 영웅 ‘마누엘 벨그라노’와 관련이 있습니다. 1770년 6월 3일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아들로 태어난 벨그라노는 아르헨티나 독립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하늘색-하얀색 국기를 탄생시킨 인물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라는 국가 탄생에 큰 기여를 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었던 만큼,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3일을 ‘이탈리아 이민자의 날’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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