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4일. 우루과이 바트예 대통령은 예고에 없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합니다. 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아르헨티나 두알데 대통령이 있는 올리보스 대통령 관저로 향했고,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습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사과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과연 2002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이야기하기에 앞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양 국가는 축구 경기가 있을 땐 살벌한 라이벌 관계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편입니다. 두 나라는 가우초, 마테, 아사도, 탱고 같이 문화가 비슷한 나라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워낙 교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쪽 국민들은 서로를 친근하게 ‘이웃’이다, ‘형제’다라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관계가 미묘해진 건 1998년 시작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 때였습니다.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2002년에만 경제 성장률이 -10.9% 감소할 만큼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참고로 모든 것이 멈췄던 코로나19 때 성장률이 -9.9%였는데,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아르헨티나 거리에는 매번 시위가 일어났고, 대통령은 4년 사이에 5번이나 바뀔 만큼 혼란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문제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단순히 아르헨티나에서만 그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루과이 경제는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 의존도가 높았고, 아르헨티나가 휘청이자 우루과이도 같이 위기를 맞게 됩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경제 위기로 콜롬비아나 다른 나라로 탈출했듯이,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환경이 비슷한 우루과이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곧 우루과이에도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로 인해 힘들어진 상황 속에서, 우루과이 바트예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에 대해 선넘는 말을 합니다. 그는 미국 언론 블룸버그와의 비공개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는 도둑들의 소굴이다.”, “ 위부터 아래까지 썩지 않은 구석이 없다.”라고 말하며 팩폭을 날린 겁니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옆 나라 대통령이 원색적으로 비난을 퍼붓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심지어 바트예 대통령은 "두알데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무능해서, 도와주는 데도 지쳤다."라고 말하며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였더라도, 그의 발언은 가뜩이나 힘든 아르헨티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었고, 가까운 이웃나라 대통령의 이런 원색적인 비판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즉각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사건이 커지자, 바트예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두알데 대통령을 만나 사과를 합니다. 그는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자신의 실언을 용서 바란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습니다. 한 국가 최고 자리에 있는 대통령이었지만, 개인의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겁니다. 그 모습에 두알데 대통령은 “이 사건을 잊고, 양국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는 말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자칫 악화될 수 있었던 두 나라의 관계는 이렇게 하나의 해프닝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