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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09. 2022

콜롬비아의 폭력 문제, 그리고 희생당한 학생들의 역사


오늘 이야기는 콜롬비아의 어두운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흔히 콜롬비아 하면 마약으로 발생한 테러를 떠올리기 쉽지만, 정치 폭력 (Political Violence)도 만만치 않게 갈등을 유발하며 콜롬비아의 평화를 파괴했습니다. 오랜 시간 비민주적인 정치가 계속되며 국가와 시민 간 유혈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오늘은 콜롬비아가 지정한 ‘희생된 학생들의 날’ (Dia del Estudiante Caido)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20세기 콜롬비아는 정치 탄압과 불공정한 일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분노를 참았던 시민들은 ‘더 나은 사회,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는데요. 우리나라의 2.28 민주 운동이나 4.19 혁명과 비슷하게, 콜롬비아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주를 이뤄 비민주 정권에 저항했다고 합니다.


콜롬비아 ‘희생된 학생들의 날’은 안타깝게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매년 6월 8일부터 9일까지 총 이틀 동안 이어지는데, 콜롬비아에서 일어났던 두 가지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나나 학살을 보도한 콜롬비아 신문 (사진 자료: La Prensa)


첫 번째 사건은 1928년 콜롬비아에서 일어났던 바나나 학살 (Masacre de las bananeras)로부터 시작됩니다. 콜롬비아 지역에서 대규모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던 미국의 United Fruits Company는 수익 극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농장에서 일하던 현지 노동자들의 어려운 환경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계약직 조건에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도 교묘한 방법으로 제공하지 않았던 겁니다. 1928년 12월, 약 25,000명의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들어갔고, United Fruits Company 경영진은 이에 대응해 콜롬비아 정부와 함께 그들을 탄압하기로 결정합니다. 평화적 협상 대신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졌고, 이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만 총 1,800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반년이 지난 1929년 6월, 콜롬비아 국립대학교의 몇몇 학생들은 '바나나 학살'에 가담한 관리들의 사임을 요구했습니다. 끔찍한 사건이 있은 뒤에도 아무 변화가 없는 점에 불만을 갖고,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구엘 멘데즈 대통령의 선택은 '탄압'이었습니다. 그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학생들의 시위 진압을 명령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 중 한 명인 곤잘로 브라보 페레즈가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암살당하게 됩니다. 평화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한 평범한 학생이 죽음은 콜롬비아 학생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매번 6월 7-8일에 그를 위한 추모 행진은 정례적인 학생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954년 사건을 보도한 신문 (사진 자료: youtube)


어쩌면 더 끔찍했던 두 번째 사건은 1954년 6월 8일에 일어났습니다. 이 날에도 학생들은 곤잘로 브라보 페레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고, 곧이어 독재를 일삼던 로하스 피니야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위한 시위로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비극은 군인들이 갑작스러운 사격을 개시하며 시작됐습니다. 보고타 7번 거리를 지나고 있던 학생들은 군인들의 총격을 받고 무참히 쓰러졌는데, 이 날에만 11명의 학생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폭력에 쓰러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던 학생들은, 폭력에 의해 또 다른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현재 콜롬비아에는 과거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는 '진실 위원회' (Comisión de la Verdad)가 있습니다. 이 조직은 게릴라, 마약 카르텔 희생자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펴낸 보고서 ‘희생된 학생들의 숨은 속삭임’에 따르면, 1962년에서 2011년 사이 총 603명의 학생이 폭력으로 살해당했으며, 오직 1968년만이 학생의 죽음이 기록되지 않은 유일한 해라고 증언합니다. 또 위원회는 희생당한 학생들이 이보다 더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알려진 역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숨겨진 폭력의 역사가 여전히 많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콜롬비아에서 과거의 어두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적어도 6월 8일과 9일 동안은 더 나은 콜롬비아를 꿈꾸다 희생당한 젊은 학생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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