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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10. 2022

아르헨티나에도 ‘독도 문제’와 비슷한 일이 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어이없는 이슈가 몇 개 있는데, 독도 문제가 그중 하나입니다. 이미 많은 역사 문서와 증거들이 한국의 땅임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일본 극우 세력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 주장합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 정부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며 대처하지만, 뭔가 쉽게 분노가 가시질 않습니다. 독도는 조그만 섬이지만, 한국의 자주적 주권을 상징하는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한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 문제처럼, 아르헨티나도 비슷한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아마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바로 영국과 싸우고 있는 말비나스섬 (Islas Malvinas), 혹은 포클랜드 제도 (Falkland Islands) 분쟁입니다. 1982년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데, 오늘은 전쟁보다는 ‘왜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의 갈등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말비나스 섬은 아르헨티나 남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섬입니다. 한눈에 봐도 아르헨티나 말고는 이 섬과 가까운 나라가 없으므로, 자연스레 아르헨티나 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1973년부터 매년 6월 10일을 ‘말비나스 섬 및 남극 지역에 대한 아르헨티나 권리 확인의 날’ (DÍA DE LA AFIRMACIÓN DE LOS DERECHOS ARGENTINOS SOBRE LAS MALVINAS, ISLAS Y SECTOR ANTÁRTICO)로 정했습니다. 한국어 스페인어 둘 다 조금 긴 기념일인데, 말비나스 섬과 남극 지역에 대해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29년 6월 10일, 스페인으로부터 갓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루이스 베르넷을 정치군사령부로 임명해 말비나스 섬으로 보냅니다. 스페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비어있던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그 주변 해상 자원에 대한 권리는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1829년 말비나스 솔레다드 항구 그림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 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다른 서구 국가들의 영토 개입 때문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대서양을 건너 태평양으로 가기 전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말비나스 섬은 예전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지배를 받았습니다. 또 가끔씩 영국, 미국 함대까지 나타나 섬을 호시탐탐 노렸을 정도로 지정학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던 겁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독립 초반부터 자신들의 소유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마치 어부였던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를 확실하게 조선의 땅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아르헨티나 당국도 베르넷을 보내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다.’라는 걸 서구 열강에게 제대로 알린 것입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영토권 소유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과 4년 뒤인 1833년, 말비나스 섬에 나타난 영국 군대는 뛰어난 함대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병사들과 주민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들은 섬에 거주하던 아르헨티나 관리자들을 강제로 쫓아냈고, 말비나스 섬은 ‘영국 식민지 (포클랜드 제도)’가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당국은 영국의 횡포에 항의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외교부는 주 아르헨티나 영국 외교관을 불러 거세게 항의했고, 영국의 영토 소유권은 명백한 주권 침해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 아르헨티나는 계속해서 영국군의 철수를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영국은 해명없이 입을 꾹 닫은채 섬을 통치했습니다. 국제적으로 힘이 없던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저지르는 불법 행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역사적 자료를 모아놓은 정부 발간물 표지 (사진 자료: 아르헨티나 정부)


대신 아르헨티나는 말비나스 섬의 주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여러 가지 역사 문서들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말비나스 섬은 ‘스페인 당국이 죄수들을 보내던 곳’이라는 문서가 있고, 문장엔 섬이 스페인 식민지의 일부였음을 뜻하는 ‘colonia’라는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모든 땅이 아르헨티나 소유가 됐으므로, 말비나스도 아르헨티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아르헨티나가 1810년부터 1835년까지 섬 주변에서 어획을 하게끔 허락했다는 공식 문서도 남아있기 때문에, 주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말비나스 문제는 ‘포클랜드 전쟁’을 주제로 한번 더 다루게 되겠지만, 아르헨티나 외교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아르헨티나 정부 자료를 좀 더 반영해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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