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도시를 여행할 때 사람들이 추천하는 랜드마크가 몇 개 있습니다. 보통 자주 등장하는 곳이 미술 박물관 (Bellas Artes), 대통령궁 (Palacio), 중앙 광장 (Plaza Central) 인데요. 한 군데 더 추천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국립 극장 (Teatro Nacional)이 아닐까 합니다. 예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해 보고타, 산티아고 등 모든 곳에 고풍스러운 극장 건물이 하나씩 있는데, 오늘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국립 극장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베네수엘라 국립 극장은 백 년도 훨씬 지난 1905년 6월 11일에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총 3층 높이로 구성된 이 거대한 극장은 전체적으로 ‘프랑스’식 건축 양식을 기반으로 디자인됐고, 바깥 모습은 진한 오렌지 색으로 덮여있어 쉽게 눈에 띕니다. 또 정면에는 그리스식 기둥이 양쪽으로 놓여있는데, 그 위에는 각각 희극과 비극을 뜻하는 조각상이 놓여 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국립 극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극장이 얼마나 화려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수용 관중 인원은 총 797명으로, 관중석은 가운데 무대를 주변으로 말굽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천장과 벽면에는 그림과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고, 위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있어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유럽에 이런 웅장한 극장들이 많은데, 그 극장들과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보통 베네수엘라 하면 극장이나 오페라, 발레 같은 이미지는 잘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는 베네수엘라의 소식은 한정적이고, 그 이미지들이 이미 굳어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19세기 중반부터 극장 문화가 조금씩 발전해 온 걸 알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1848년 처음 선보여진 오페라는, 1890년대 말엔 짧은 오페라로 볼 수 있는 프랑스식 오페레타 (operetta)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스페인에서 시작된 사르수엘라 (사설, 노래, 합창, 춤으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악극)가 카라카스에서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입니다. 베네수엘라 국립 극장에서 최초로 공연된 작품도 ‘번개’ (‘El Relampago’)라는 이름을 가진 사르수엘라였던 걸 보면, 당시 인기가 어땠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는 소개해 드린 국립극장 말고도 시립 극장 (Teatro Municipal)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작품성 높은 공연들이 주로 이 두 극장에서 펼쳐졌는데, 두 곳 다 베네수엘라 문화를 이끌었던 중요한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테레사 카레뇨 극장, 마데레로 극장이 차례대로 생겨나면서, 카라카스는 한 동안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도시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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