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Jun 13. 2022

아침, 점심, 저녁 대통령이 달랐던 콜롬비아 이야기

하루 3번 대통령이 바뀌었던, 혼란스러웠던 콜롬비아의 정치 역사


며칠  ‘콜롬비아의 희생된 학생의  대해 짧게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링크) 1954 6 9,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11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게  안타까운 날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암흑기나 다름없던  콜롬비아 역사의 연장선이라  있습니다. 바로 학생들이 물러나길 원했던 로하스 피니야 (Rojas Pinilla) 대통령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1953년 6월 13일, 콜롬비아는 평소와 똑같은 조용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로베르토 우르다네타 아르벨라에즈 (Roberto Urdaneta Arbeláez)였고, 그도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시작했습니다. 콜롬비아 정세가 혼란스럽긴 했어도, 쿠데타나 시위 같은 일은 상상할 수 없는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오전 7시쯤 우르다네타 대통령에게 전화  통이 걸려옵니다. 바로 라우레아노 고메즈 (Laureano Gómez)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었습니다. 사실 우르다네타 대통령은 고메즈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되며 임명된, 어떻게 보면 정당성 (legitimacy) 결여된 대통령이었습니다. 1951년부터  2 가까이 대통령직을 맡아오면서 우르다네타 대통령은 콜롬비아 군부 최고 실세인 로하스 피니야 장군과 가까워졌는데, 고메즈 대통령이 피니야를 주의해야  인물로 여겨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고메즈 대통령 (사진 자료: biosiglos)


고메즈 대통령은 전화 통화에서 우르다네타 대통령에게 ‘피니야를 육군 총사령관 자리에서 해임시킬 것’을 명합니다. 피니야 세력이 더욱 강해지며 결국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대비한 특단의 대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르다네타 대통령은 이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피니야를 해임시키길 원한다면, 나 대신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라 그를 사임해라”라고 답합니다.


우르다네타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자, 고메즈는 오전 10시경 직접 대통령궁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르다네타 말대로 대통령직을 되찾고, 피니야를 총사령관 자리에서 제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시 대통령이 된 그는 특별 장관 회의를 소집했고, 로물로 가이탄을 새로운 군사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새로운 내각을 꾸릴 채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피니야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콜롬비아 주요 지역에 있던 군 관계자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고, 수도 보고타에 있는 대통령 궁을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군부대 실세나 다름없던 피니야와 비교하면 고메즈 대통령은 저항할만한 마땅한 힘이 없었습니다. 쿠데타 소식을 들은 뒤 오후 내내 지인의 집에 숨어있던 고메즈 대통령은 밤 10시가 돼서야 피니야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고, 이후 스페인으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로하스 피니야 (사진 자료: eltiempo)


6월 13일 하루에만 세 명의 대통령 (우르다네타, 고메스, 피니야)이 있었던 콜롬비아.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도 했던 이 날은, 콜롬비아의 어지러웠던 1950년대 정치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긴박한 하루를 보낸 콜롬비아는, 결국 군부 정권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한편 사령관 자격으로 한국 전쟁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피니야 새 대통령은 “더 이상 콜롬비아에서 내전으로 벌어지는 폭력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콜롬비아 국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또 학교, 병원,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하며 경제 발전에 집중했는데, 이 때문에 피니야 정부는 전통적인 독재 정권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기간 동안 피니야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했고, 학생 시위를 과잉 진압하는 일을 저지릅니다. 사람들은 점차 피니야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1957년에는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습니다. 불과 4년 만에 콜롬비아는 군부 정권 대신 민주 정권을 원했고, 1958년 카마르고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짧았던 피니야 군부 정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빛과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