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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19. 2022

칠레 안전법을 통째로 바꾼 광산 사고 이야기


칠레는 세계 1위의 구리 생산 국가입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70년대부터 구리 생산이 급격하게 늘어났는데요. 현재 전 세계 구리 생산의 30% 이상이 칠레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가장 규모가 큰 광산도 칠레에 몰려 있습니다. 


국가별 구리 광산 생산량 (자료: USGS)


오늘의 이야기는 칠레 주요 광산 중 하나인 엘 떼니엔테 (El Teniente) 광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80km 남쪽에 떨어진 이 광산은, 해발 2,000미터나 되는 안데스 산맥 중간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하에는 광산 작업을 위해 파놓은 갱도가 여러 개 있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4,500km나 된다고 합니다. 1905년부터 채광이 시작된 이곳은 칠레의 핵심 광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칠레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 곳입니다. 


먼저 칠레 광산과 관련한 사건 하면 코피아포 (Copiapo)에서 일어난 '33인의 기적'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2010년 8월 산호세 광산에서 일어난 붕괴 사고는 33명이나 되는 인부를 지하 700미터 아래에 갇히게 만들었습니다. 식량, 물, 위생 시설 어느 하나 갖춰진 게 없던 인부들의 환경은 절망적이었지만, 하루하루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려 67일을 지하에서 버틴 결과 인부 전원이 구조되며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줬고, 훗날 'The 33'이라는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됩니다. 


하지만 1945년 6월 19일 엘 떼니엔테 광산에서 벌어진 사고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날 광산 입구에서 갑자기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고, 독성 연기가 아래 갱도로 빠르게 확산하며 통로 전체를 암흑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다행히 입구 근처에 있던 광부들은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지하 깊숙한 곳에서 채굴 작업을 하던 광부들은 연기를 뚫고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뒤늦게 탈출 경보가 울리고 환풍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긴급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이미 놓쳐버린 겁니다.


사고로 희생된 광부들의 묘지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칠레에서는 이 사건을 ‘연기의 비극 (Tragedia del Humo)’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엘 떼니엔테 광산 사고로 무려 355명이 희생되고 747명의 부상자가 생겼는데, 이는 칠레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광산 분야에서 생긴 최악의 사고로 꼽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만든 건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발생한 것이 아닌, 사전 관리만 잘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예고된 인재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칠레 정부는 대대적으로 산업 안전법 체제를 바꾸게 됩니다. 예전에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노동자 보호법을 개선했고, 위험도가 덜 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광산 안전부'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이전부터 안전법이 갖춰졌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정부는 뒤늦게라도 대처 방안을 내놓으며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으려 노력했던 겁니다.


또 칠레 정부는 희생자들에 대한 철저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했습니다. 우선 오히긴스 재단 (Fundación O’Higgins)을  만들어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보상 활동을 시작했고,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진상규명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광산을 운영하던 미국 브래든 기업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함께 추후 대비책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1945년 벌어진 비극 이후 안전은 무시한 채 이득만 챙기는 외국 기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됐고, 칠레 광산에 대한 국영화 논의가 조금씩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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