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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21. 2022

남미 원주민들의 새해가 6월 21일에 시작되는 이유


매년 6월 21일은 하지(夏至)입니다. 하루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데요. 하지만 이건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의 이야기일 뿐, 남반구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특히 남미에선 이 날이 해가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우리나라로 치면 동지(冬至)와 같은 날입니다. 


남미 원주민들에게 매년 6월 21일은 굉장히 중요한 날로 여겨져 왔습니다. 심지어 칠레 남부에 사는 마푸체족과 안데스 지역의 아이마라족에게는 이날이 일 년의 첫 출발을 알리는 새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레고리력이라 불리는 양력을 쓰면서 '1월 1일=새해' 개념에 익숙해져 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세계관과 달력이 존재했던 겁니다. 참고로 아이마라족의 방식을 따르면 올해 2022년은 5,530년, 마푸체족은 무려 12,480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마푸체 족의 새해 기념 의식 (사진 자료: araucania andina)

 

원주민 문화에서 6월 21일이 새해로 정해진 건 다 나름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잉카 제국 사람들이 태양의 신을 믿고 숭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태양은 과거 많은 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큰 의미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특히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햇빛을 통한 양분은 필수였기 때문에, 태양이 모든 작물이 자라나는 걸 좌지우지할 만큼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주민들은 6월 21일을 기점으로 태양이 떠 있는 날이 점점 더 길어진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고, 이날을 ‘새로운 태양’이 귀환하는 날, 즉 새해가 시작되는 축제의 날로 인식했던 겁니다.  


오늘날 많은 마푸체족이 거주하는 칠레에서는 6월 21일을 ‘원주민의 날' (Día de los Pueblos Indígenas)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이 날 마푸체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로 “"Akuy we tripantu", "Wiñoi tripantu"라고 외치는데, 해석하면 “새해가 시작됐다.", “(해가 뜨는) 새벽이 돌아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새해가 시작되는 날 밤, 마푸체 사람들은 해가 뜰 때까지 장작불을 피우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 해 마지막 날 종소리를 듣고 서로 덕담을 나누는 것처럼, 마푸체 사람들은 가족이나 공동체가 모여 같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이날을 즐기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볼리비아 아이마라족 새해 


한편 가장 많은 아이마라 원주민이 살고 있는 볼리비아에서도 비슷한 축제가 벌어집니다. 2009년,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는 이날을 아예 공휴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이마라 전통을 기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날을 아이마라어로 새해를 뜻하는 '마차크 마라' (Machaq Mara)라 부르거나, 태양의 귀환을 뜻하는 '윌까꾸끼' (Willkakuti)로 부르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약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태양의 귀환을 위한 축제가 벌어집니다. 특히 티티카카 호수에서 벌어지는 축제가 가장 성스럽고 의미 있는 행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수 근처에는 ‘태양의 문’을 뜻하는 띠와나꾸 (Tiwanaku)가 세워져 있는데, 매년 6월 21일이 되면 아이마라 성직자가 이 문을 통과하는 새해 첫날의 태양 빛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는 걸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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