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600명도 안 되는 군사로, 수 만 명의 적을 무찔렀다.”
위 문장은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Hernan Cortes)의 영웅담을 함축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세계사 전체를 놓고 봐도, 600명이 인구 20만 명이 넘는 제국을 정복한 건 엄청난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원주민 입장에선 침략자이자 학살자였지만, 스페인 입장에선 코르테스가 어느 정도 용감함과 결단력을 갖춘 리더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코르테스가 항상 100% 승리하며 아스텍 제국을 무너뜨린 건 아니었습니다. 역사에서는 “아스텍 제국이 코르테스에 의해 멸망했다.”라는 한 줄의 내용이 강조되며 마치 아스텍이 손쉽게 정복된 걸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정복 과정에 있어 코르테스는 많은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그도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고, 많은 군사를 잃으며 눈물을 삼켰던 겁니다.
그중 코르테스가 목숨을 잃을 뻔한 결정적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슬픔의 밤’(Noche Triste)이라 불리는 전투입니다. 1520년 6월 30일 밤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아스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벌어진 아스텍 군과 코르테스가 맞붙었던 전투로, 사실상 아스텍 군이 스페인 군대를 전멸시킬 뻔했던 싸움이었습니다. 적의 맹렬한 공격에서 겨우 탈출한 코르테스는 이날 밤 거의 모든 부하들을 잃었고, 아스텍 정복의 꿈을 완전히 접어야만 했습니다.
‘슬픔의 밤’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코르테스가 어떻게 아스텍 제국의 수도까지 입성할 수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단 600명의 부하만 거느리고 있던 코르테스가 테노치티틀란까지 들어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당시 아스텍 황제였던 몬테수마 2세는 하얀 피부를 가진 코르테스를 아스텍의 신 중 한 명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황제는 아무 의심 없이 스페인 군대를 환대했고, 코르테스는 힘들이지 않고 수도에 입성하게 됩니다. 며칠 뒤, 기회를 엿보던 스페인군은 틀라스칼텍 부족과 힘을 합쳐 황제와 귀족을 급습했고, 그들을 포로로 잡아 아스텍 제국 정복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즈텍인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쉽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외지 사람들에 쉽게 항복할 생각이 없었고, 특히 자신들이 다스리던 틀라스카텍 부족에게는 더더욱 항복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스텍 사람들은 스페인 군에 대항하는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했고, 톡스카틀 축제에서 벌어진 갈등을 계기로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코르테스는 황제 몬테수마 2세를 포로로 잡고 있는 만큼 여유를 부렸습니다. 황제라는 인질 카드로 아스텍 군과 협상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아스텍 사람들은 무능한 황제에게 등을 돌린지 오래였고, 오직 스페인 사람들을 쫓아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처음에야 스페인의 총과 대포를 무서워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 무기에 익숙해지며 맞춤형 전략으로 스페인 군대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싸움을 겪은 스페인 군사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아스텍 군대의 압도적인 수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방이 물로 되어있는 인공섬 테노치티틀란을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코르테스는 탈출하기 위해 급히 다리를 만들 것을 명령했고, 이후에는 그마저도 끊기며 수영으로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몇몇 스페인 병사들은 목숨이 달린 긴박한 상황에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황금을 챙겨 왔는데, 그 무게가 워낙 무거워 결국 강에서 익사하거나 아스텍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결국 위대한 정복자처럼 보이는 코르테스도, 정복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을 겪은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슬픔의 밤' 사건은 스페인 군이 정복 과정에서 처음 맛본 패배이자, 최악의 사상자를 낸 씁쓸한 전투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절망에 빠진 코르테스가 결코 정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코르테스는 다른 지역에서 정복 중이던 스페인 군을 합쳐 재정비했고, 마침 천연두가 퍼져 혼란에 빠진 테노치티틀란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일 년 뒤, 자신이 갈망하던 아스텍 제국을 무너뜨리며 세계사의 흐름을 뒤집은 인물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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