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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02. 2022

싱크: 한 흑인 노예의 기적 같은 아메리카 대륙 탈출기


오늘의 이야기는 기적적으로 노예 신분에서 탈출한 흑인 노예, 조셉 싱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한 개인의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카리브해에 존재하던 노예 제도 폐지에 불을 지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탈출기는 1997년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아미스타드' (Amistad)로 탄생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는데요. 쿠바, 스페인, 미국, 시에라리온을 오가며 벌어졌던 그의 극적인 탈출 스토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조셉 싱크는 원래 시에라리온 출신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의 출생일은 정확히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결혼을 한 뒤 아이 3명을 책임지기 위해 농사일을 하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농사일을 시작하며 생긴 빚을 갚지 못하며 결국 노예로 팔려나가고 맙니다. 시에라리온  바이는 그를 적절한 값에 스페인 무역상에 팔았고, 그렇게 싱크는 가족과 강제 이별을   낯선 쿠바 땅에 도착합니다.


보통 아프리카인들은 탈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노예 그대로의 에 순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싱크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되찾길 원했던 그는, 쿠바에서의 탈출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는 아바나가 아닌 카마구에이 지역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게 아미스타드 범선에 올라타게 됐고, 1839년 7월 2일 스페인 선원을 급습하며 배를 납치하는 데 성공합니다.


1839년 7월 2일 반란을 아미스타드호를 묘사한 삽화 (사진 자료: history.com)


싱크는 그 과정에서 스페인 선원 두 명을 살해했고, 나머지 스페인 선원들에게는 배를 시에라리온으로 몰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선원들은 아프리카 대륙이 아닌 다른 쪽으로 몰래 방향을 틀어 그들을 없앨 계획을 세웠는데요. 약 두 달 동안 바다 위를 항해하던 아미스타드 호는 지금의 뉴욕 롱아일랜드 항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스페인 선원들은 싱크와 그의 동료를 쿠바에서 태어난 노예로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쿠바 카마구에이로 향하고 있었는데, 배가 납치되며 미국까지 오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조셉 싱크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노예가 아닌 아프리카에서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며, 아프리카로 보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 것입니다.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흘러온 아미스타드 호는 노예 제도 폐지를 둘러싸고 국제적 논쟁에 불을 지폈습니다. 영국은 1814년 맺은 헨트 조약 (Treaty of Ghent)을 언급하며 "스페인은 적도 이북의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조약에 동의했으니, 아프리카인을 석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봤을 때, 그들은 노예가 아닌 불법으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이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우선 아미스타드호가 자신들의 배고, 노예들의 습격을 받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국제법 나름의 논리도 있지만, 스페인 법에 따르면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 모든 스페인 배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 영국인들이나 노예 폐지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프리카인들을 하나의 소유물, 즉 노예가 아닌 스페인 선원을 살해한 살인자들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논쟁하는 싱크와 스페인 측을 묘사한 삽화 (history.com) 


국제법 vs. 스페인 법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결국 판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었습니다. 미국 법원은 고민 끝에 "아프리카인들이 어쩔 수 없는 무력을 사용한 것이며, 그들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노예 제도는 남부 분파의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압박을 받은 마틴 밴 뷰런 (Martin Van Buren) 미국 대통령은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소할 것을 명령했고, 이는 결국 대법원의 손에 맡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조셉 스토리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립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적으로 쿠바에 왔다. 미국은 그들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이 사건은 정의와 국제법 원칙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가 쟁점이 되어야 하며, 이 흑인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판결문 주요 부분 요약)


3년이란 시간이 지난 끝에, 싱크와 그의 동료들은 그제야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시에라리온으로 돌아가느냐 였는데, 다행히 미국 노예 폐지론자들의 도움을 받아 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싱크를 포함한 35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됐고,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카리브 지역에서는 노예 폐지론이 더욱 힘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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