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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03. 2022

중남미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꼽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매일 중남미 역사 이야기를 적다 보면, '지금은 당연시 여기는 것들이 과거엔 아니었구나'라는 걸 자주 느끼게 됩니다. 자유를 앗아간 노예 제도도 그렇고, 정치의 기본 권리인 투표권도 1~2세기 전에는 당연한 게 아니었던 겁니다.  


여성의 참정권도 당연한 게 아니었던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적었고, 자연스레 사회 진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치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는 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변화에 관대한 나라가 몇몇 있었는데, 남미에서는 특히 우루과이가 그랬습니다. 1927년 7월 3일 우루과이에서는 여성 참여가 가능한 선거를 열었는데, 이는 남미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실현시킨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게 됩니다.


쎄로 차토 마을 (사진 자료: el frente)


우루과이에서 첫 여성 투표가 이뤄진 건 쎄로 차토 (Cerro Chato)라 불리는 마을에서였습니다. 인구 600여 명의 한적한 시골 마을 쎄로 차토는 당시 두라즈노 (Durazno), 플로리다 (Florida),  뜨레인 따이 뜨레스 (Treinta y Tres) 주 경계 사이에 놓이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결국 마을은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어느 주에 속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민 투표를 실행하게 됐는데요. 이때 우루과이 선거관리원은 공식 법령을 통해 “주민들은 국적·성별 구분 없이 사전에 개설된 등기소에 등록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여성의 투표를 허용했습니다.


쎄로 차토에서의 여성 참정권은 결코 우연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권 활동가 파울리나 루이지 (Paulina Luisi)는 인권 활동가는 1900년대 초부터 우루과이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여성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 "Acción Femenina"를 창간하며 여성의 인식 개선을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국제적으로도 그녀는 여성에 관한 다양한 회의에서 우루과이 대표자로 나가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파울리나 루이지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그녀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단체 덕분에, 우루과이 헌법은 1917년 여성이 투표하고 공직을 맡을 일반적인 권리를 선언하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참정권이 실제로 법이 되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차지해야 했습니다. 1919년 파울리나 루이시는 또 다른 법적 장애물을 넘기 위해 우루과이 여성 참정권 연맹(Uruguayan Women's Suffrage Alliance)을 설립해 사회 운동을 계속해 나갔고, 결국 1932년 의회의 승인을 받으며 여성의 투표 자격을 얻게 됩니다.


우루과이 국민은 모두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남성과 여성 모두입니다. 모든 시민은 유권자이며, 공직을 맡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루과이 헌법 내용)


한편 우루과이는 여성의 참정권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 이슈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온 나라로 유명합니다.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최초로 LGBT를 위한 사회 보장제도를 법으로 보장했으며,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국가가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루과이의 모습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선진화된 민주주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루과이는 많은 인덱스에서 칠레, 코스타리카와 함께 중남미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공고화 된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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