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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04. 2022

변절자 혹은 창조자, 탱고 음악의 전설 피아졸라 이야기


1992 7 4, 탱고 역사의  획을 그은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반도네온 연주가로도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였는데요. 기존 탱고를 새롭게 해석해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기존 연주가들에게는 엉터리라며 심지어 살해 협박까지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탱고의 전설로 남은 피아졸라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지금까지 ‘5 중남미 역사 상식’에서 소개된 많은 예술가들처럼, 피아졸라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재능과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9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반도네온을 조금씩 연주하며 탱고를 접하게 됐고, 이후에는 부모님을 따라 뉴욕에서 살며 재즈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합니다. 마침 미국의 1920-1930년대는 재즈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였는데, 이는 피아졸라가 훗날 탱고 음악을 제작하는  있어 많은 영감을 주게 됩니다.


아르헨티나에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클래식을 연주했지만, 승리 (Triunfal)를 연주한 것이 큰 찬사를 받아 본격적인 탱고 연주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피아졸라는 전통적인 탱고 음악을 벗어나 새로운 탱고, 즉 누에보 탱고를 작곡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재즈 음률을 집어넣는 다던가, 플루트, 색소폰, 심지어 일렉트릭 기타 같은 기존에 쓰지 않는 악기를 병합하여 완전히 다른 탱고 음악을 만들어낸 겁니다.  


반도네온을 들고 있는 피아졸라의 모습 (사진 자료: Fundación Astor Piazzolla)


그의 다양한 시도는 탱고의 혁신이라    있었지만, 전통적인 탱고에서 많이 벗어나 이상한 음악을 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그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피아졸라를 이단아, 변절자라고 평가했고, 심지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택시 기사는 그의 음악성을 거론하며 탑승을 거부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탱고를 변절시켰으니, 기존 탱고 아티스트들과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의 음악이 마이너하고 생소하게 들렸던 겁니다.


하지만 피아졸라는 비판에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해나갔습니다. 아르헨티나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와 사바토 (Ernesto Sábato)를 포함한 작가, 시인들과도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보였고, 당시의 재즈 거장들과도 누에보 탱고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또 그가 이전부터 만들어온 탱고에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는 지속적인 도전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수년 동안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보다 미국, 브라질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먼저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음악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밖에도 피아졸라는 아티스트의 삶을 살아오며  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면 페론주의자들의 압박을 받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색이 들어간 음악을 작곡한다던지, 밴드 멤버들과 불화가 생긴다던지, 서구의 락앤롤과 포크 때문에 탱고의 인기가 시들어버린 암흑기를 겪었던 것입니다.  피아졸라는 외부적인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한다는 신념을 보여줬고, 결국 탱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참고: 수많은 피아졸라의 명곡 중에서 '리베르 땅고', '아디오스 노니노'는 그의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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