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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06. 2022

어록으로 본 프리다 칼로의 인생


1907년 7월 6일은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출생한 날입니다. 2018년 여름, 개인적으로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녀가 남긴 삶의 흔적을 직접 보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무언가 (경외감?)를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중남미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중남미 도시 거리 곳곳에는 프리다 칼로의 벽화를   있을 만큼, 하나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워낙 유명한 만큼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사실, 어렸을  겪은 교통사고 일화는 인터넷 상에 이미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그녀가 남긴 어록을 보며 프리다 칼로의 인생과 철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프리다 칼로 벽화


(1) “나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을 그릴뿐”


먼저 미술사에서는 프리다 칼로를 초현실주의자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초현실주의 화가가 아님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이 프리다 칼로 그림에서 보이는 요소들을 초현실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프리다 칼로가 현실에서 겪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작품 중 ‘헨리 포드 병원’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속 프리다는 병상에 힘없이 누워있고, 달팽이, 태아, 골반뼈 등이 탯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림이 워낙 초현실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프리다는 자신이 실제로 겪은 고통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2) “나는 나를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그림의 주제는 바로 ‘나'이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고를 당하며 몸은 망가졌고, 사랑 관계에 있어서도 고통의 시간을 가지며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이면 절망하기 쉽지만,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림에 녹여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녀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진정한 예술가였던 겁니다.


프리다는 그녀의 인생에서 총 143점의 작품을 남깁니다. 그중 55점이나 되는 작품이 자화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녀는 그녀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삶을 담담히 표현해 내는걸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뮤즈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다. 내가 더 잘 알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라고 말한 것도 ‘나’를 사랑하는 태도를 가졌던 프리다 칼로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3)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있는  살아있음이 행복하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삶을 아픔을 넘어 산산조각 났다고 묘사합니다. 아픔을 초월해, 고통에 의해 조각조각 부서진 것입니다. 아무리 프리다가 현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신체와 정신을 격렬히 괴롭히는 고통은 참기 힘들었을 거라 상상됩니다. 이런 와중에, 그림은 그녀의 탈출구나 다름없었습니다. 부서진 그녀의 삶을 표현하고, 작품을 통해 그녀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는 침대 천장에 붙은 거울을 보며 그림을 그린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그림에 열정적이 었던 건, 그림이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창구이자 거울이었기 때문일 갑니다. “그림은 나의 삶을 완성시켰다.”라고 말한 건,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당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해라”


프리다 칼로의 성향은 혁명적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혁명 정치적이기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조금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녀에게 혁명이란 단어는 ‘자신을 쓸모없게 만들지 말라’, ‘스스로를 한계 짓지 말아라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년을 고통과 함께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불행이 삶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이 열정의 연료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순간 어려움을 극복하는 태도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5)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  자화상을 보면, 프리다 칼로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있습니다. 온몸은 못으로 박혀있고,  가운데엔 목부터 허리까지 그리스 양식의 기둥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일생동안 소마아비, 골절, 오른발 탈골, 척추수술 7번을 포함  32번의 수술을 받았는데, 아마 그림으로 느껴지는 고통의  백배는 더했을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임종전 그녀는 현실을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싶은 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짧은 글로 그녀의 생애를 요약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짧게나마 조사를 하는 동안 왜 그녀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영감을 주는지에 대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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