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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14. 2022

‘축구 전쟁’이란 이름이 만들어낸 오해와 진실들


중남미 대륙에서 벌어진 여러 전쟁 중에 ‘축구 전쟁' (Guerra de Fútbol)이 있습니다. 중미에 있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충돌했던 전쟁인데요. 1969년 7월 14일부터 5일간 벌어진 전쟁은 3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치열했던 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글은 ‘축구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이, “사실은 다른 이름이 붙여졌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당시 두 나라는 1970년 월드컵 최종 예선 티켓을 두고 경기를 치렀고, 경기 직후 전쟁이 일어나 ‘축구 전쟁’이라 부르는 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축구 전쟁'이란 이름이 축구 경기 하나 때문에 전쟁이 시작된 듯한 뉘앙스를 주고 있는데요. 축구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이전부터 존재하던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자주 언급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지도 (사진 자료: bbc)


전쟁의 진짜 원인을 살펴보기 이전에, 두 나라가 가지고 있던 사회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에는 소수 엘리트들이 대농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60년대 말, 엘살바도르에서는 불과 0.5%의 지주들이 전체 땅의 40%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 같은 상황은 온두라스도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두 나라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면, 온두라스는 엘살바도르보다 그나마 영토가 넓었다는 점입니다. 온두라스에선 인구 밀도가 낮아 소작농들이 그나마 농사를 지을 땅이 있었던 반면, 엘살바도르는 농사를 짓고 살아갈 공간조차 없었던 겁니다. 절박한 몇몇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60년대 후반엔 국경을 넘어간 이민자 수가 무려 3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두 나라 간 경제적 갈등도 존재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1960년에 중미 공동시장 (MCCA) 가입하며 교류를 확대하기로 동의했는데요. 문제는 엘살바도르의 산업이 더 발달해 있다 보니, 엘살바도르 기업이 이익을 차지하고 온두라스의 산업 발전은 더뎌지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온두라스 무역 적자는 더욱 늘어났고, 온두라스 사람들의 불만은 조금씩 쌓여만 갔습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경을 넘어 농사를 방해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엘살바도르에 대한 불만은 분노로 바뀌게 됩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들 (사진 자료: diez.hn)


결정적으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국경 문제로 오랜 시간 갈등을 겪은 나라였습니다. 1869년부터 국경 경계선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두 나라는 확실한 협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이를 방치해 뒀습니다. 이때 당시 두 나라의 교과서나 책만 봐도 국경은 각자 이익에 맞춰 그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국경 문제로 벌어진 해프닝도 있었는데요. 안토니오 아르게따 (Antonio Argueta)라는 온두라스 대농장 주주는 (고의인지는 모르지만) 국경을 넘어 엘살바도르 땅에 농장을 건설하며 주권 침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축구 전쟁은 양국 사이에 얽혀있는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전쟁이었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축구 경기 직후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축구 전쟁'이란 흥미로운 이름이 붙여지게  겁니다. 일부에서는  전쟁을 ‘축구 전쟁대신 ‘100시간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무슨 이름이든간에, 중요한  전쟁이 시작된 진짜 원인을 파악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축구'라는 단어 이면에는 양국의 경제, 외교,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히며 일어났던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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