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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16. 2022

40년 동안 이어진 니카라과의 세습 정치 이야기


니카라과는 중미에 위치한 나라로,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 사이에 있는 나라입니다. 화산과 호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한데요. 하지만 뛰어난 자연 풍경과는 반대로, 정치 역사에는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니카라과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모사 정권의 흥망 성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니카라과 지도 (사진 자료: 브리타니카)


니카라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소모사 (Somoza) 가문입니다. 중간중간 끊긴 적이 있었어도, 소모사 가족은 사실상 1936년부터 1979년까지 니카라과 정치를 지배했는데요. 아나스타시오 소모자 가르시아는 (Anastasio Somoza García) 1937년부터 1956년까지 꽤나 오래 대통령을 맡았고, 그의 맏아들인 루이스 (Luis Somoza Debayle)는 1957년부터 1963년까지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또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Anastasio Somoza Debayle)는 1967년부터 1972년, 그리고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을 하며 사실상 3명이 한 나라를 40년 동안 지배했습니다.


쉽게 예상이 가시겠지만, 소모사 가문이 정치를 하는 동안 니카라과에서는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대가로 엘리트들의 이익을 챙겨줬고, 반대로 힘없는 농부들에게는 토지를 약탈했습니다. 또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정치 세력은 철저하게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독재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중미 지역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두려워했던 미국이 소모사 가족을 암묵적으로 지원하면서, 무서울 것 없이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됐습니다.  


세 명의 소모사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는 가장 최악으로 꼽힙니다. 인권 탄압은 기본이었고, 그에게 저항하는 산디니스타 혁명군을 강하게 억압했습니다. 또 1972년 자신의 임기가 끝났음에도 사실상 뒤에서 실세 역할을 하며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1972년 수도 마나구아에서 큰 지진이 나며 많은 인명 피해가 났을 때였습니다.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선진국들이 보낸 해외 원조를 빼돌려, 개인적인 부를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행동은 그나마 남아있던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소모사 (사진 자료: national geographic)


이 같은 억압적인 행동을 보고, 미국은 더 이상 소모사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국가로 형성된 미주기구 (OEA)도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카라과 교회와 NGO들도 더 이상 그의 독재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성명을 내면서, 그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그는 1979년 7월 16일에 사임 선언을 했고, 바로 다음날 미국 마이애미로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상당 수의 니카라과 국가 보물들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한편 미국은 소모사의 망명 신청을 거절했고, 은신처를 찾던 소모사는 파라과이로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같은 독재자 동료인 파라과이의 스트로스너 대통령이 그나마 그를 받아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행을 저지른 뒤에도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수영장이 딸린 넓은 교외 주택에서 살며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평화로운 망명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80년 9월, 산디니스타 요원들은 그가 머물던 집을 급습했고, 그들이 목표했던 소모사 암살 작전을 성공시켰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 소모사 가르시아가 암살당했던 것처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고, 이후 니카라과는 소모사의 시대를 끝내고 산디니스타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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