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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17. 2022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황금에 눈이 멀었던 건 아니었다?


1566년 7월 17일. 스페인 출신의 성직자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건 ‘원주민의 권리를 위해 싸운 최초의 유럽인’이었기 때문인데요. 자신의 고향 스페인에선 많은 비판을 받으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훗날 시몬 볼리바르, 호세 마르티와 같은 중남미 영웅들에게 큰 영감을 준 인물이었습니다.


데 라스 카사스가 살았던 대항해 시대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보여준 탐욕과 잔혹함은 워낙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지금의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에서의 일화는 워낙 유명한 사건입니다. 콜럼버스가 막 섬에 도착했을 때 약 수십만 명의 타이노 부족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음식과 집을 제공하며 호의적으로 대해줬습니다. 하지만 불과 30년 사이, 스페인 사람들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원주민들을 죽였고 거기에 전염병까지 번지며 타이노 족의 인구는 불과 3만 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탐욕에 눈이 멀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몇몇 스페인 교회 성직자들은 원주민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이야기된 마야의 기록을 모두 불태운 디에고 데 란다와는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자신의 양심이 말하는 그대로 원주민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국적과 신분을 넘어 원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했다는 면에서, 황금만 생각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던 스페인 정복자들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라스 카사스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흥미로운 점은, 데 라스 카사스가 처음부터 원주민 보호를 주장한 건 아니었단 점입니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으로 파견됐을 때, 그도 똑같이 원주민들의 노동으로 혜택을 보고 넓은 땅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그는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라는 성직자를 만났고,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아닌 것인가?”, “스페인은 무슨 권리로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가?”


이 질문을 들은 뒤, 데 라스 카사스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할 같은 인간인데, 그들이 노예가 되고 착취하는 걸 부당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평화로운 섬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정복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악마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지했던 행동도 잘못됐음을 깨닫게 됐고, 그때부터 자신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원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카사스는 1542년 스페인 국왕에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히 들려주기 위해 한 책을 완성시킵니다. “원주민 파괴에 대한 간단한 설명” (Brevísima relación de la destrucción de las Indias)이란 보고서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죽어갔는지 묘사하며, 야욕과 탐욕에 눈이 멀었던 그들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글은 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이슈가 됐고, ‘원주민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라스 카사스가 끈 책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책이 출간된 이후, 스페인 국왕 카를 5세는 카사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주민 보호와 관련된 새 법령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많은 사람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원주민을 기반으로 대농장을 관리하던 스페인 지배층에게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유명한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세풀베다는 “원주민은 저급하며 문명화되어야 할 존재다.” “카사스의 논리라면 스페인 황제도 범죄자이며, 그의 신념은 위험한 이단적 생각이다.”라며 비판했습니다. 스페인에서 너무 많은 적을 두었던 카사스는 많은 곳에서 미움을 받았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물질적 성공에 욕심이 멀었을 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의 모습은 몇 세기가 지난 뒤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중남미 지역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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